한국교회와 정교분리
― 신학·역사·현실을 아우르는 실천적 해설
(발표자: 박동호 목사)
● 질문 1
“한국교회는 정교분리를 지켜야 합니까?”
○ 답변
“정교분리”는 교회가 정치적 중립을 지키라는 뜻이 아니라,
국가권력이 교회의 신앙양심과 복음을 침해하지 못하게 하려는 원리입니다.
즉, “교회는 국가를 섬기되 하나님보다 위에 두지 않는다”는 성경적 질서입니다.
■ 성경적 근거
•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마 22:21)
→ 정치와 신앙을 단절시키는 명령이 아니라, 각 영역의 책임을 구분하되 모든 권세가 하나님께 속함을 선포한 말씀입니다.
• 사도행전 5:29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 국가가 신앙양심을 억압할 때 교회는 저항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의 자유, 정교분리의 본질입니다.
■ 역사적 맥락
• 중세 로마교회: 정치권력의 신성화로 복음이 권력의 수단이 됨.
• 프랑스혁명 이후: 극단적 세속주의(laïcité)로 신앙이 공공영역에서 배제됨.
• 루터: “두 왕국설”을 통해 세속 권력과 교회의 역할 구분, 그러나 모두 하나님께 속함을 강조.
• 칼뱅: 제네바에서 신앙의 공적 책임을 강조하며, “하나님 앞의 공의로운 정치”를 추구함.
■ 현대적 적용
헌법 제20조는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규정하지만,
이 조항은 교회가 사회정의·윤리문제에 침묵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국가가 신앙의 자유를 침해하지 못하게 보장하는 장치입니다.
교회는 정치세력의 하수인이 되어서는 안 되지만,
도덕적 양심과 진리의 목소리로 정치의 타락을 견제해야 합니다.
● 결론: 정교분리는 교회의 침묵 명령이 아니라 **‘신앙의 자유를 위한 울타리이자 복음의 공공성 수호선’**입니다.
● 질문 2
“교회가 정치에 개입하면 왜 안 됩니까?”
○ 답변
핵심은 ‘개입’의 성격입니다.
• 예언자적 참여(engage) ↔ 정치적 개입(interfere) 은 완전히 다릅니다.
① 교회의 정체성
• 교회는 정치권력을 쥐는 기관이 아니라, 양심을 일깨우는 공동체입니다.
• 정당 지지나 특정 후보 선전은 복음의 초월성과 공공성을 훼손하지만, 생명·정의·가정·진리 문제에 대한 발언은 복음의 의무입니다.
② 신학적 근거
• 아모스·이사야·예레미야: 공적 예언자로서 정치·경제적 불의를 책망함.
• 요한계시록: 로마제국의 짐승의 권세를 폭로하며 권력숭배를 우상으로 규정.
• 결론: 성경 전체가 정치적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를 담고 있으며, 교회의 참여 목적은 권력 획득이 아니라 의(義)의 선포여야 합니다.
③ 역사적 교훈
• 일제 신사참배: 정치에 순응한 신앙의 타락.
• 1980년대 민주화운동: 복음의 사회정의 실천.
• 교회가 권력에 빌붙을 때 신뢰를 잃고, 진리로 권력을 견제할 때 역사 속에서 빛났습니다.
■ 결론: 교회는 정치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되며,
동시에 정치적 책임을 회피해서도 안 됩니다.
“정치화된 교회는 타락이고, 양심을 잃은 교회는 배교입니다.”
● 질문 3
“신구약 전체가 정치문제까지 말한다면, 교회는 어디까지 관여해야 합니까?”
○ 답변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공공정의와 사회질서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를 다룹니다.
■ 구약
• 모세 율법: 사회법·형법·노동법·토지법까지 포함된 공동체의 정치헌장.
• 예언자들: 왕과 귀족의 부패, 사회적 약자 억압을 꾸짖음.
• 다윗: “공의와 정의로 나라를 세웠다”(삼하 8:15). 즉, 정치적 리더십은 영적 책임의 영역입니다.
■ 신약
• 세례요한: 헤롯의 도덕적 죄를 지적하다 순교.
• 바울: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다”(롬 13), 그러나 불의한 법에는 신앙적 저항의 자유를 선언.
• 예수의 십자가: 로마 정치제도 속 신앙의 정치적 사건이었습니다.
■ 오늘의 적용
교회는 정당의 선거 캠프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공의 사절단입니다.
세상 속에서 교회는 세 가지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 도덕적 나침반 – 불의와 부패를 꾸짖음
• 예언자적 비판자 – 진리로 권력을 견제
• 화해의 중재자 – 분열된 사회 속에서 정의와 사랑의 균형 제시
교회가 정치 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세속화가 아니라 복음의 공공적 확장입니다.
단, 목적이 “정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있을 때만 참된 신앙행위가 됩니다.
● 질문 4
“그렇다면 오늘 한국교회가 감당해야 할 ‘공적 신앙’은 무엇입니까?”
○ 답변
한국교회는 정교분리를 빌미로 불의에 침묵해 온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정치적 중립’은 진리의 침묵이 아니라 진리의 균형감각을 뜻합니다.
교회는 권력의 편이 아니라 진리의 편에 서야 합니다.
■ 교회가 발언해야 할 영역
• 사회정의와 법의 공의
• 생명존중과 약자보호
• 도덕적 법치와 가정의 회복
• 국가안보와 사회통합
→ 이것들은 정치의 영역이 아니라 복음적 가치의 영역입니다.
■ 교회의 방향
교회는 특정 정당이나 인물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되며,
비판과 대안의 영성으로 정의를 세우고 사회를 화해로 이끌어야 합니다.
■ 결론: 교회는 정교분리를 지키되,
하나님의 정의와 진리를 세상에 선포하는 공적 책임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정치에 복음을 종속시키지 말고, 복음으로 정치를 새롭게 하라.
● 질문 5
“교회가 정치적 현안이나 선거에 의견을 내면 헌법 위반 아닙니까?”
○ 답변
대한민국 헌법 제20조는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를 함께 규정합니다.
이는 교회가 정당·선거에 직접 개입하거나 권력과 결탁하는 것을 금지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정교분리는 “신앙인이 정치·윤리·공공논의에 침묵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은 요셉·다니엘·바울·초대교회를 통해 불의한 권력과 사회악에 대한 공적 증언의 사명을 보여줍니다.
■ 실천적 구분
구분 / 금지 / 허용
• 정치활동 : 선거운동, 정당지지, 권력결탁 / 불의·부패 비판, 약자 보호, 도덕·윤리문제 발언
• 법적 근거 : 공직선거법·헌법 제20조 위반 / 헌법상 종교·표현의 자유 보장
• 신앙적 의미 : 복음 세속화 / 복음의 공공성 실천
■ 결론: 교회와 정치권력은 철저히 분리되어야 하며,
교회는 권력을 잡는 대신 도덕적 양심과 공공정의의 등불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는 헌법이 보장하는 신앙의 자유를 누리며, 사회 전체를 복음적 가치로 새롭게 비출 수 있습니다.
● 질문 6
“교회의 정치 참여는 어디까지 가능한가 ― 찬반 논점과 핵심 근거”
○ 답변
교회의 정치 참여는 “정치권력의 도구가 되지 않으면서,
공공정의와 도덕적 양심을 드러내는 예언자적 사명”의 범위 안에서 가능하며,
그 선은 **‘권력 개입은 금지, 진리 증언은 사명’**입니다.
■ 성경·신학 근거
• 구약·신약 모두 사회·정치 문제 언급 (요셉·다니엘·예언자·바울 등).
• 불의·부패·약자 문제에 침묵은 죄(미 6:8, 사 1:17).
• 예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요 18:36).
• 바울: 복음은 궁극 구원이며 정치 개입으로 훼손될 수 있음(롬 13).
■ 역사 근거
• 본회퍼·흑인교회 등: 불의한 체제 비판으로 긍정적 변화 창출.
• 한국 민주화운동: 복음의 정의 실천.
• 반면 중세 정교일치·현대 정치화 교회: 부패와 분열 초래.
■ 사회·실천 근거
• 교회는 시민윤리의 양심으로 사회정책을 비판·제언 가능.
• 단, 정당·선거운동 참여는 교회 본질 훼손.
• 약자·부정·부패 앞에서 침묵은 복음의 배반.
• 교회가 정치조직화되면 영적 권위 상실.
■ 헌법·제도 근거
• 헌법 제20조: 종교·정치 기능 분리.
• 선거법: 종교단체의 선거 개입 금지.
• 그러나 공공선에 대한 윤리적 발언은 종교의 자유로 보장됨.
■ 결론적 관점
• “정치는 완전히 외면할 수 없는 공동선의 영역이며,
교회는 복음적 윤리로 이를 비추어야 한다.”
• “정교분리는 권력 분리이지, 진리 침묵이 아니다.”
• 교회는 권력과 분리, 진리로 참여.
● 종합 요약 표
구분 : 잘못된 정교분리 / 바른 정교분리
개념 : 교회는 정치에 침묵해야 함 / 교회는 권력 간섭 없이 진리를 선포
목적 : 세속과 신앙의 단절 / 하나님 주권 아래의 질서 분립
결과 : 침묵하는 교회, 타락한 사회 / 공의를 선포하는 교회, 정의로운 사회
핵심구절 :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마 22:21)
교훈 : 권력은 신성화될 수 없고, 교회는 세속화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