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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5-10-10 (금)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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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회와 정교분리(질문) ― 신구약·역사·신학·헌법이 말하는 공적 신앙과 교회의 정치참여 ― (Ⅰ부: 신학·역사·헌법적 고찰) ”
한국교회와 정교분리
― 신구약·역사·신학·헌법이 말하는 공적 신앙과 교회의 정치참여 ―
(Ⅰ부: 신학·역사·헌법적 고찰)
발제자 | 박동호 목사

Ⅰ. 서론 ― 정교분리의 오해와 진실

한국교회는 ‘정교분리’라는 개념에 대해 오랜 시간 혼란을 겪어왔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를 교회가 정치나 사회 문제에 침묵해야 한다는 명령으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본래의 정교분리는,
“국가권력이 신앙의 자유와 복음의 증거를 침해하지 못하도록 세운 신앙적 울타리”
입니다.
즉, 교회의 자유를 보장하고, 복음의 공공성을 지키기 위한 신앙적 방어선이자
하나님의 주권과 세속 권력의 질서를 바로 세우는 원리입니다.
오늘날 이 주제가 다시 논의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한국사회는 교회의 정치화, 혹은 교회의 침묵이라는 양극단의 오류 속에 서 있습니다.
복음의 사회적 책임을 회복하기 위해, 우리는
성경적·신학적·역사적·헌법적 차원에서 정교분리의 참된 의미를 다시 성찰해야 합니다.


Ⅱ. 성경적 근거 ― 신구약에 나타난 공공적 책임

1. 구약성경: 하나님 통치와 사회정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직접 다스리는 신정공동체였습니다.
모세·여호수아·사사·다윗 등은 종교지도자이면서 동시에 정치지도자였습니다.
율법은 단순한 종교 규범이 아니라, 공동체의 헌법이었습니다.
사회법, 형법, 분배, 토지, 노동, 약자 보호까지 포괄하며
“하나님의 통치 질서가 사회의 구조 속에 실현되도록” 명시했습니다(신명기 10:18, 레위기 19:15).
예언자들은 권력의 부패와 불의, 약자 억압을 공적으로 꾸짖었습니다.
아모스와 미가는 왕과 귀족을 향해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강같이 흐르게 하라”(암 5:24)
고 외쳤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약의 정교분리 정신입니다. 정치와 신앙을 분리하되, 모든 영역이 하나님께 속함을 인정하는 원리입니다.

2. 신약성경: 복음과 권세의 질서
예수께서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마 22:21)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정치와 신앙을 분리시키라는 선언이 아니라,
“각 영역의 책임은 구분되되,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 속한다”는 원리입니다.
사도행전 5:29에서 사도들은 말합니다.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는 국가권력이 신앙을 억압할 때 교회는 순응이 아니라 저항할 권리와 의무가 있음을 밝힌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로마제국의 권력 우상을 ‘짐승의 권세’로 묘사하며
권력숭배와 우상화를 동시에 경고했습니다.
즉, 신구약 전체가 정치·사회질서를 하나님의 공의 아래 두는 신앙적 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3. 요약 정리
구분구약신약핵심주제하나님 통치와 공동체 정의복음의 공공성과 신앙의 자유대표사례모세·다윗·예언자들의 사회비판예수·바울·요한의 권세관결론신앙은 사회법과 윤리를 포괄함신앙은 권력을 초월하되 공공선에 참여
■결론: 신구약 전체는 ‘정치침묵’을 명령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 나라의 질서가 사회정의·윤리·공동선의 기준까지 확장되도록 요구한다.


Ⅲ. 역사적 고찰 ― 정교분리의 빛과 그림자

1. 중세의 실패: 정교일치의 부패
로마교회는 국가권력과 결탁하여 “정교일치”를 이뤘지만,
그 결과는 신앙의 세속화와 교회의 타락이었습니다.
교황은 정치권력을 신성시했고, 복음은 권력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권력결탁 = 교회 부패라는 교훈을 남겼습니다.

2. 근대의 오용: 세속주의의 확산
프랑스혁명 이후, ‘정교분리(laïcité)’는 국가가 종교를 통제하거나
신앙을 ‘사적 영역’으로 가두는 명분이 되었습니다.
교회의 사회적 윤리와 복음의 공공성은 급격히 약화되었습니다.
과도한 분리 = 복음의 침묵이라는 역효과를 낳았습니다.

3. 한국교회의 경험
• 일제강점기: 신사참배는 “정치에 굴복한 신앙의 타락”이었습니다.
• 1980년대 민주화운동: 교회는 불의한 체제에 맞서며 예언자적 사회참여를 회복했습니다.
• 오늘날: 일부 교회의 정치화는 신앙의 신뢰를 훼손하고 있으며,
반대로 과도한 침묵은 세상 속 복음의 영향력을 상실시켰습니다.
■ 역사적 교훈
권력에 순응한 교회는 쇠퇴했고,
진리를 외친 교회는 역사를 이끌었다.


Ⅳ. 신학적 관점 ― 교회의 정치참여는 어디까지인가?

1. 참여(Engage)와 개입(Interfere)의 구분
교회의 예언자적 참여는 신학적으로 정당하며,
정당·선거·권력에 대한 직접 개입은 복음의 본질을 왜곡합니다.
구분예언자적 참여정치적 개입성격불의 비판·공공선 제시권력 추구·정당 지지결과복음의 공공성 확장신앙의 세속화평가사명적 책임본질적 타락
예언자적 참여는 비판과 대안의 영성을 포함합니다.
즉, 교회는 사회의 병든 곳을 드러내되, 동시에 치유의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2. 복음의 공공성과 하나님 주권
성경은 신앙을 사적인 신념으로 제한하지 않습니다.
공동체 정의, 생명 존중, 법과 윤리, 약자 보호 등은 모두 하나님의 통치 영역입니다.
정치와 신앙은 기능적으로 구분되지만,
주권의 원천은 동일하게 하나님께 있습니다.
칼뱅은 “정치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 포함된 거룩한 사역”이라 했습니다.
즉, 교회는 정치를 배척할 수도, 지배할 수도 없으며
오직 복음적 기준으로 판단하고 비판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3. 교회의 도덕적 사명
교회의 사명은 세 가지입니다.
도덕적 나침반 — 불의와 부패를 꾸짖음
예언자적 비판자 — 진리의 관점으로 권력을 견제
화해의 중재자 — 분열된 사회에 사랑과 정의를 회복
정치화된 교회는 타락이지만,
양심을 잃은 교회는 배교입니다.


Ⅴ. 헌법적·현실적 적용 ― 신앙의 자유와 공공의 책임

1. 헌법 제20조의 의미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
이 조항은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가집니다.
① 국가권력이 교회의 신앙과 예배를 통제할 수 없다는 원칙,
② 교회가 정당정치나 선거권력을 직접 행사할 수 없다는 한계입니다.
그러나 헌법은 교회의 사회적 발언과 공익적 목소리를 금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종교의 자유 안에 포함됩니다.
따라서 교회는
“정당·선거에는 개입하지 말되,
사회정의·생명·윤리 문제에는 반드시 발언하라.”
는 균형적 책임을 져야 합니다.

2. 오늘 한국교회의 공적 책임
교회는 정당·정치권의 하수인이 되어서는 안 되며,
사회적 도덕성과 공공정의를 세우는 **‘양심의 기관’**이 되어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회복해야 할 것은 권력의 영향력이 아니라,
복음의 도덕적 신뢰입니다.
사회가 혼란할수록 교회는 “예언자적 목소리”로
진리·공의·사랑을 선포해야 합니다.


Ⅵ. 결론 ― 정교분리의 참된 의미

정교분리는 교회의 침묵 명령이 아니라,
복음의 자유를 지키는 신앙의 방파제입니다.
교회는 국가를 섬기되 하나님보다 위에 두지 않으며,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채 세상을 섬기는 하나님 나라의 대사관입니다.
“복음 없는 사회참여는 공허하고,
성경 중심 없는 교회 일치는 위험하다.”
정교분리를 바로 세우는 길은
정치로부터의 분리공공선에 대한 참여의 균형입니다.
이것이 오늘의 한국교회가 회복해야 할 공적 신앙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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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5-10-10 (금)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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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회와 정교분리 ― 교회의 정치참여는 어디까지 가능한가? ”
한국교회와 정교분리 ― 교회의 정치참여는 어디까지 가능한가?
발제 : 박동호 목사

Ⅰ. 서론 ― 왜 다시 ‘정교분리’를 말해야 하는가?

21세기 한국교회는 "정교분리"를 오해하거나, 그 이름으로 침묵해 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진정한 정교분리는 교회를 국가권력의 통제에서 지키는 신앙의 울타리이지, 교회가 사회와 정치로부터 멀어져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성경은 모든 사회현장과 정치적 현실에 신자의 책임과 참여,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를 역설한다[1][2][3][10].

이제 우리는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교회는 정치와 사회문제에 대해 어디까지 발언해야 하는가?" 
"복음은 개인의 구원만을 말하는가, 아니면 사회의 공의와 공동선을 포괄하는가?"



Ⅱ. 성경적 근거 – 신구약 전체에 나타난 ‘정치성’과 교회의 책임

## 구약성경
- 구약 시대 이스라엘 공동체는 하나님의 신정정치(theocracy)로 다스려진 정치사회였다[4][5].
- 모세, 여호수아, 다윗, 솔로몬 등은 모두 선지자이자 정치 지도자 역할을 동시에 수행했다. 율법은 사회 질서와 공동체 정의, 권력과 분배의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였다[6].
- 예언자들은 국가권력과 왕, 지도층의 부조리와 부패, 사회적 불의를 신앙의 이름으로 비판하고 개혁했다. 이는 신앙과 정치의 분리가 아니라, 오히려 신앙적 정의의 정치적 개입을 보여주는 전례다[6][9].

## 신약성경
- 예수의 사역과 십자가 사건은 당시 유대 민족과 로마제국의 정치권력과 직접적으로 충돌한 매우 정치적인 사건이다[3].
- 사도바울은 로마법과 시민권, 권력에 대해 신앙의 윤리로써 복종·저항의 경계를 가르쳤다(행 16:37, 롬 13장). 요한계시록은 정치적 핍박을 견뎌내는 공동체의 정치적 저항성을 강조한다[3][7].
- 신약 교회 조직(장로 제도 등)도 신앙적 공동체 질서이면서 실질적으로 대표자 선출과 회중 참여 등 정치적 구조를 내포하고 있다[4][5].

### 요약
성경의 신정통치는 단순히 교리적 원리가 아니라, 공동체의 윤리, 사회질서, 국가정책의 영역까지 모두 포괄하는 말씀이며, 교회도 사회의 공공성, 정의, 법, 제도, 약자 보호에서 적극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1][6][8].



Ⅲ. 역사적 고찰 ― 서방 및 한국교회, 정교분리의 명암

## 서구사와 종교개혁
- 중세 카톨릭의 ‘종교정치 결탁’은 교권의 타락과 종교전쟁을 초래. 종교개혁자 루터·칼뱅은 ‘두 왕국론’을 통해 세속과 교회의 분리를 주장했으나, 사회참여·공공신앙·교회 자치권을 동시에 강조했다[5].
- 칼뱅은 제네바에서 신앙과 사회 정의를 결합하는 공적 신앙의 모델을 제시했다.

## 근대 세속주의의 왜곡
- 프랑스 혁명 이후 정교분리는 국가 권력으로부터 종교를 소외시키는 수단이 되었고, 복음의 사회적 힘과 공동윤리도 함께 약화되었다[1].

## 한국교회 경험
- 일제강점기 신사참배는 정치권력과 교회의 결탁이 낳은 치욕. 
- 1980년대 민주화운동 속에서는 복음적 사회참여와 예언자적 입장이 국민적 신뢰를 회복했다. 권력에 순응한 교회는 쇠퇴했고, 진리를 선포한 교회는 역사를 이끌었다[10][11].



Ⅳ. 신학적 관점 – 신정통치 안에서 교회의 사명

## 신정통치의 본질
- 하나님은 온 세상, 정치·법·경제·윤리·문화의 모든 영역에 주권적으로 통치하신다. 교회는 그 현장적 도구이자 공동체다[1][5].
- 신정통치는 실제적인 정치 시스템(모세시대 재판제도, 장로 정치, 선출/의회/권징 등)이 포함된다. 교회 정치의 성경적 근거는 구약·신약 전체에 일관된다[4][5].

## 교회의 예언자적 사명
- 교회는 사회정의 실현, 약자 보호, 불의 비판, 사회 개혁, 공공질서 유지 등 시대마다 예언자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6][8][11].
- 예언적 설교와 공동체 양육은 단순한 영적 구원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사명과 시민 문화, 사회변혁에까지 미친다[6][12].

## 참여와 개입의 구분
- 교회는 특정 정당의 도구로 전락해서는 안 되나, 정의와 진리, 윤리, 공동선 등 사회적 이슈에 견제와 대안을 제시해야 하며, 법‧제도‧윤리‧복지‧생명‧가정 등 사회 전분야에 신앙적 입장을 분명히 드러내야 한다[7][8][9].



Ⅴ. 현실적 적용 – 오늘 한국교회의 공적 책임

## 잘못된 정교분리 극복
- 교회는 ‘정치적 중립’을 구실로 사회참여를 회피해서는 안 되며, 공의·정의·공공윤리·윤리·법질서·약자보호 등 신앙적 실천의 최전선에 서야 한다[10][11].
- 신앙에 바탕한 시민윤리, 사회 개혁, 예언자적 저항·비판·대안 제시의 사명을 장기적으로 실현해야 한다.

## 실천적 사명
- 목회자들은 시대적 공공의제를 성경에 비추어 설교해야 하며, 성도들은 신앙적 시민으로서 사회책임을 감당해야 한다[11].
- 교회는 사회정의와 공동선, 사랑과 환대, 평화, 화해의 거룩한 가치 실천에 앞장서며, 시대와 권력구조를 진리로 비추어야 한다[8][12][11].


Ⅵ. 결론 – 하나님 나라의 질서와 공공신앙

복음 없는 사회참여는 공허하며, 성경 중심 없는 교회 일치는 위험하다. 신구약이 보여주는 하나님의 신정통치와 사회적 책임, 예언자적 사명은 교회가 정치 속에 침묵하거나 도구화되는 것을 경계한다. 교회는 권력과 이념의 경계를 넘어, 진리·자유·공의의 기준으로 세상을 비추며, 하나님 나라의 대사로 시대를 변화시키는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1][3][8][10][11].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라.” (마 5:14-16)


# 참고자료:
• 존 스토트, 『그리스도인은 왜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 D.A. Carson, 『정교분리와 기독교 공공성』
• 박용규, 『한국교회와 신사참배 문제 연구』
• 김영한, 『공적신앙과 정교분리의 신학』
• 김회권, 『성경적 정의와 사회참여』

인용:
[1] 백금산의 책꽂이 <8> 성경의 관점에서 본 정치와 국가란 무엇 ... https://rnrbook.com/118/?bmode=view&idx=12693690
[2] 성경이 말하는 기독교인의 정치참여 https://www.chpress.net/column-detail.html?cate=column&c_id=27&id=8581
[3] 복음과 정교분리 https://theworldview.co.kr/archives/10548
[4] [총회헌법 해설]장로회 정치의 성경적 근거 http://www.newspower.co.kr/44756
[5] 칼빈의 교회론과 정치에 관한 교훈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36466
[6] 김창훈교수, 예언자적 설교 의의와 중요성 http://www.reformednews.co.kr/2952
[7] 정교분리는 정부에 대한 교회의 불간섭이 아니다 - 기독일보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84097
[8] 교회는 정치에 관여하지 말라? 이건 아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64350
[9] 한국교회의 정교분리, 과연 성경적일까? : 오피니언 http://kr.christianitydaily.com/articles/90046/20161129/%ED%95%9C%EA%B5%AD%EA%B5%90%ED%9A%8C%EC%9D%98-%EC%A0%95%EA%B5%90%EB%B6%84%EB%A6%AC-%EA%B3%BC%EC%97%B0-%EC%84%B1%EA%B2%BD%EC%A0%81%EC%9D%BC%EA%B9%8C.htm
[10] 기독교회와 신자의 정치참여 어떻게 할 것인가? http://www.newspower.co.kr/51326
[11] 교회, 정권의 하수인 아닌 예언자가 돼야 https://www.igood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51421
[12] 존 스토트와 하용조, '사회참여' / "예언자적 역할 부족했다" 평가 https://m.cafe.daum.net/0691144000/EWX8/1165
[13] 성경에 입각한 기독정치의 참여와 실제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194206
[14] 정치 체제로서의 신정국가에 반대하는 종교적 주장? : r/religion https://www.reddit.com/r/religion/comments/140sxgy/religious_arguments_against_theocracy/
[15] 서평- 신정통주의 신학이란 무엇인가? http://www.cbooknews.com/?c=25%2F36&p=32&uid=11899
[16] Fuller KDMin - 한국적 상황에서의 예언자적 애통과 사회참여 http://kdmin.fuller.edu/a/seminar/6444
[17] 기독교 신정 정치 원하세요? : r/TrueChristian https://www.reddit.com/r/TrueChristian/comments/x8fnd8/would_you_want_a_christian_theocrasy/
[18] 예언자적 시사 읽기-목회자멘토링 컨퍼런스 https://sermon-jesus.tistory.com/17957505
[19] 정교 분리에 대한 한국 교회의 오해 http://kr.christianitydaily.com/articles/102623/20200114/%EA%B8%B0%EA%B3%A0-%EC%9B%A8%EC%9D%B8-%EA%B7%B8%EB%A3%A8%EB%8E%80%EC%9D%98-%EC%84%B1%EA%B2%BD%EA%B3%BC-%EC%A0%95%EC%B9%98.htm
[20] “'비정치'가 한국교회의 전통적 입장은 아니다” : 교계교단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23929
[21] 그리스도인의 사회 참여 관련 도서 세트(전3권) https://mall.godpeople.com/?G=1300767119-3
[22] 이정훈 교수 “'하나님 통치'가 정교분리 위배? 공부 좀 하라”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35022
[23] 예언자적 상상력 | 월터 브루그만 - 교보문고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1449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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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5-10-10 (금)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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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회와 정교분리 ― 질문과 답변 ― ”
한국교회와 정교분리
― 신학·역사·현실을 아우르는 실천적 해설
(발표자: 박동호 목사)

● 질문 1
“한국교회는 정교분리를 지켜야 합니까?”

○ 답변
“정교분리”는 교회가 정치적 중립을 지키라는 뜻이 아니라,
국가권력이 교회의 신앙양심과 복음을 침해하지 못하게 하려는 원리입니다.
즉, “교회는 국가를 섬기되 하나님보다 위에 두지 않는다”는 성경적 질서입니다.

■ 성경적 근거
•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마 22:21)
→ 정치와 신앙을 단절시키는 명령이 아니라, 각 영역의 책임을 구분하되 모든 권세가 하나님께 속함을 선포한 말씀입니다.
• 사도행전 5:29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 국가가 신앙양심을 억압할 때 교회는 저항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의 자유, 정교분리의 본질입니다.

■ 역사적 맥락
• 중세 로마교회: 정치권력의 신성화로 복음이 권력의 수단이 됨.
• 프랑스혁명 이후: 극단적 세속주의(laïcité)로 신앙이 공공영역에서 배제됨.
• 루터: “두 왕국설”을 통해 세속 권력과 교회의 역할 구분, 그러나 모두 하나님께 속함을 강조.
• 칼뱅: 제네바에서 신앙의 공적 책임을 강조하며, “하나님 앞의 공의로운 정치”를 추구함.

■ 현대적 적용
헌법 제20조는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규정하지만,
이 조항은 교회가 사회정의·윤리문제에 침묵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국가가 신앙의 자유를 침해하지 못하게 보장하는 장치입니다.
교회는 정치세력의 하수인이 되어서는 안 되지만,
도덕적 양심과 진리의 목소리로 정치의 타락을 견제해야 합니다.

● 결론: 정교분리는 교회의 침묵 명령이 아니라 **‘신앙의 자유를 위한 울타리이자 복음의 공공성 수호선’**입니다.


● 질문 2
“교회가 정치에 개입하면 왜 안 됩니까?”

○ 답변
핵심은 ‘개입’의 성격입니다.
• 예언자적 참여(engage)정치적 개입(interfere) 은 완전히 다릅니다.
① 교회의 정체성
• 교회는 정치권력을 쥐는 기관이 아니라, 양심을 일깨우는 공동체입니다.
• 정당 지지나 특정 후보 선전은 복음의 초월성과 공공성을 훼손하지만, 생명·정의·가정·진리 문제에 대한 발언은 복음의 의무입니다.
② 신학적 근거
• 아모스·이사야·예레미야: 공적 예언자로서 정치·경제적 불의를 책망함.
• 요한계시록: 로마제국의 짐승의 권세를 폭로하며 권력숭배를 우상으로 규정.
• 결론: 성경 전체가 정치적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를 담고 있으며, 교회의 참여 목적은 권력 획득이 아니라 의(義)의 선포여야 합니다.
③ 역사적 교훈
• 일제 신사참배: 정치에 순응한 신앙의 타락.
• 1980년대 민주화운동: 복음의 사회정의 실천.
• 교회가 권력에 빌붙을 때 신뢰를 잃고, 진리로 권력을 견제할 때 역사 속에서 빛났습니다.

■ 결론: 교회는 정치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되며,
동시에 정치적 책임을 회피해서도 안 됩니다.
“정치화된 교회는 타락이고, 양심을 잃은 교회는 배교입니다.”


● 질문 3
“신구약 전체가 정치문제까지 말한다면, 교회는 어디까지 관여해야 합니까?”

○ 답변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공공정의와 사회질서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를 다룹니다.

■ 구약
• 모세 율법: 사회법·형법·노동법·토지법까지 포함된 공동체의 정치헌장.
• 예언자들: 왕과 귀족의 부패, 사회적 약자 억압을 꾸짖음.
• 다윗: “공의와 정의로 나라를 세웠다”(삼하 8:15). 즉, 정치적 리더십은 영적 책임의 영역입니다.

■ 신약
• 세례요한: 헤롯의 도덕적 죄를 지적하다 순교.
• 바울: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다”(롬 13), 그러나 불의한 법에는 신앙적 저항의 자유를 선언.
• 예수의 십자가: 로마 정치제도 속 신앙의 정치적 사건이었습니다.

■ 오늘의 적용
교회는 정당의 선거 캠프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공의 사절단입니다.
세상 속에서 교회는 세 가지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 도덕적 나침반 – 불의와 부패를 꾸짖음
• 예언자적 비판자 – 진리로 권력을 견제
• 화해의 중재자 – 분열된 사회 속에서 정의와 사랑의 균형 제시
교회가 정치 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세속화가 아니라 복음의 공공적 확장입니다.
단, 목적이 “정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있을 때만 참된 신앙행위가 됩니다.


● 질문 4
“그렇다면 오늘 한국교회가 감당해야 할 ‘공적 신앙’은 무엇입니까?”

○ 답변
한국교회는 정교분리를 빌미로 불의에 침묵해 온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정치적 중립’은 진리의 침묵이 아니라 진리의 균형감각을 뜻합니다.
교회는 권력의 편이 아니라 진리의 편에 서야 합니다.

■ 교회가 발언해야 할 영역
• 사회정의와 법의 공의
• 생명존중과 약자보호
• 도덕적 법치와 가정의 회복
• 국가안보와 사회통합
→ 이것들은 정치의 영역이 아니라 복음적 가치의 영역입니다.

■ 교회의 방향
교회는 특정 정당이나 인물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되며,
비판과 대안의 영성으로 정의를 세우고 사회를 화해로 이끌어야 합니다.

■ 결론: 교회는 정교분리를 지키되,
하나님의 정의와 진리를 세상에 선포하는 공적 책임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정치에 복음을 종속시키지 말고, 복음으로 정치를 새롭게 하라.


● 질문 5
“교회가 정치적 현안이나 선거에 의견을 내면 헌법 위반 아닙니까?”

○ 답변
대한민국 헌법 제20조는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를 함께 규정합니다.
이는 교회가 정당·선거에 직접 개입하거나 권력과 결탁하는 것을 금지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정교분리는 “신앙인이 정치·윤리·공공논의에 침묵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은 요셉·다니엘·바울·초대교회를 통해 불의한 권력과 사회악에 대한 공적 증언의 사명을 보여줍니다.

■ 실천적 구분
구분 / 금지 / 허용
• 정치활동 : 선거운동, 정당지지, 권력결탁 / 불의·부패 비판, 약자 보호, 도덕·윤리문제 발언
• 법적 근거 : 공직선거법·헌법 제20조 위반 / 헌법상 종교·표현의 자유 보장
• 신앙적 의미 : 복음 세속화 / 복음의 공공성 실천
 
■ 결론: 교회와 정치권력은 철저히 분리되어야 하며,
교회는 권력을 잡는 대신 도덕적 양심과 공공정의의 등불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는 헌법이 보장하는 신앙의 자유를 누리며, 사회 전체를 복음적 가치로 새롭게 비출 수 있습니다.


● 질문 6
“교회의 정치 참여는 어디까지 가능한가 ― 찬반 논점과 핵심 근거”

○ 답변
교회의 정치 참여는 “정치권력의 도구가 되지 않으면서,
공공정의와 도덕적 양심을 드러내는 예언자적 사명”의 범위 안에서 가능하며,
그 선은 **‘권력 개입은 금지, 진리 증언은 사명’**입니다.

■ 성경·신학 근거
• 구약·신약 모두 사회·정치 문제 언급 (요셉·다니엘·예언자·바울 등).
• 불의·부패·약자 문제에 침묵은 죄(미 6:8, 사 1:17).
• 예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요 18:36).
• 바울: 복음은 궁극 구원이며 정치 개입으로 훼손될 수 있음(롬 13).

■ 역사 근거
• 본회퍼·흑인교회 등: 불의한 체제 비판으로 긍정적 변화 창출.
• 한국 민주화운동: 복음의 정의 실천.
• 반면 중세 정교일치·현대 정치화 교회: 부패와 분열 초래.

■ 사회·실천 근거
• 교회는 시민윤리의 양심으로 사회정책을 비판·제언 가능.
• 단, 정당·선거운동 참여는 교회 본질 훼손.
• 약자·부정·부패 앞에서 침묵은 복음의 배반.
• 교회가 정치조직화되면 영적 권위 상실.

■ 헌법·제도 근거
• 헌법 제20조: 종교·정치 기능 분리.
• 선거법: 종교단체의 선거 개입 금지.
• 그러나 공공선에 대한 윤리적 발언은 종교의 자유로 보장됨.

■ 결론적 관점
• “정치는 완전히 외면할 수 없는 공동선의 영역이며,
교회는 복음적 윤리로 이를 비추어야 한다.”
• “정교분리는 권력 분리이지, 진리 침묵이 아니다.”
• 교회는 권력과 분리, 진리로 참여.

● 종합 요약 표
구분 : 잘못된 정교분리  /  바른 정교분리
개념 : 교회는 정치에 침묵해야 함 / 교회는 권력 간섭 없이 진리를 선포
목적 : 세속과 신앙의 단절  /  하나님 주권 아래의 질서 분립
결과 : 침묵하는 교회, 타락한 사회  /  공의를 선포하는 교회, 정의로운 사회
핵심구절 :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마 22:21)
교훈 : 권력은 신성화될 수 없고, 교회는 세속화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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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5-10-10 (금)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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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회와 정교분리 ”
한국교회와 정교분리
― 신구약·역사·신학·헌법이 말하는 공적 신앙과 교회의 정치참여 ―
(Ⅰ부: 신학·역사·헌법적 고찰)
발제자 | 박동호 목사

Ⅰ. 서론 ― 정교분리의 오해와 진실

한국교회는 ‘정교분리’라는 개념에 대해 오랜 시간 혼란을 겪어왔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를 교회가 정치나 사회 문제에 침묵해야 한다는 명령으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본래의 정교분리는,
“국가권력이 신앙의 자유와 복음의 증거를 침해하지 못하도록 세운 신앙적 울타리”
입니다.
즉, 교회의 자유를 보장하고, 복음의 공공성을 지키기 위한 신앙적 방어선이자
하나님의 주권과 세속 권력의 질서를 바로 세우는 원리입니다.
오늘날 이 주제가 다시 논의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한국사회는 교회의 정치화, 혹은 교회의 침묵이라는 양극단의 오류 속에 서 있습니다.
복음의 사회적 책임을 회복하기 위해, 우리는
성경적·신학적·역사적·헌법적 차원에서 정교분리의 참된 의미를 다시 성찰해야 합니다.


Ⅱ. 성경적 근거 ― 신구약에 나타난 공공적 책임

1. 구약성경: 하나님 통치와 사회정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직접 다스리는 신정공동체였습니다.
모세·여호수아·사사·다윗 등은 종교지도자이면서 동시에 정치지도자였습니다.
율법은 단순한 종교 규범이 아니라, 공동체의 헌법이었습니다.
사회법, 형법, 분배, 토지, 노동, 약자 보호까지 포괄하며
“하나님의 통치 질서가 사회의 구조 속에 실현되도록” 명시했습니다(신명기 10:18, 레위기 19:15).
예언자들은 권력의 부패와 불의, 약자 억압을 공적으로 꾸짖었습니다.
아모스와 미가는 왕과 귀족을 향해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강같이 흐르게 하라”(암 5:24)
고 외쳤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약의 정교분리 정신입니다. 정치와 신앙을 분리하되, 모든 영역이 하나님께 속함을 인정하는 원리입니다.

2. 신약성경: 복음과 권세의 질서
예수께서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마 22:21)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정치와 신앙을 분리시키라는 선언이 아니라,
“각 영역의 책임은 구분되되,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 속한다”는 원리입니다.
사도행전 5:29에서 사도들은 말합니다.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는 국가권력이 신앙을 억압할 때 교회는 순응이 아니라 저항할 권리와 의무가 있음을 밝힌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로마제국의 권력 우상을 ‘짐승의 권세’로 묘사하며
권력숭배와 우상화를 동시에 경고했습니다.
즉, 신구약 전체가 정치·사회질서를 하나님의 공의 아래 두는 신앙적 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3. 요약 정리
구분구약신약핵심주제하나님 통치와 공동체 정의복음의 공공성과 신앙의 자유대표사례모세·다윗·예언자들의 사회비판예수·바울·요한의 권세관결론신앙은 사회법과 윤리를 포괄함신앙은 권력을 초월하되 공공선에 참여
■결론: 신구약 전체는 ‘정치침묵’을 명령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 나라의 질서가 사회정의·윤리·공동선의 기준까지 확장되도록 요구한다.


Ⅲ. 역사적 고찰 ― 정교분리의 빛과 그림자

1. 중세의 실패: 정교일치의 부패
로마교회는 국가권력과 결탁하여 “정교일치”를 이뤘지만,
그 결과는 신앙의 세속화와 교회의 타락이었습니다.
교황은 정치권력을 신성시했고, 복음은 권력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권력결탁 = 교회 부패라는 교훈을 남겼습니다.

2. 근대의 오용: 세속주의의 확산
프랑스혁명 이후, ‘정교분리(laïcité)’는 국가가 종교를 통제하거나
신앙을 ‘사적 영역’으로 가두는 명분이 되었습니다.
교회의 사회적 윤리와 복음의 공공성은 급격히 약화되었습니다.
과도한 분리 = 복음의 침묵이라는 역효과를 낳았습니다.

3. 한국교회의 경험
• 일제강점기: 신사참배는 “정치에 굴복한 신앙의 타락”이었습니다.
• 1980년대 민주화운동: 교회는 불의한 체제에 맞서며 예언자적 사회참여를 회복했습니다.
• 오늘날: 일부 교회의 정치화는 신앙의 신뢰를 훼손하고 있으며,
반대로 과도한 침묵은 세상 속 복음의 영향력을 상실시켰습니다.
■ 역사적 교훈
권력에 순응한 교회는 쇠퇴했고,
진리를 외친 교회는 역사를 이끌었다.


Ⅳ. 신학적 관점 ― 교회의 정치참여는 어디까지인가?

1. 참여(Engage)와 개입(Interfere)의 구분
교회의 예언자적 참여는 신학적으로 정당하며,
정당·선거·권력에 대한 직접 개입은 복음의 본질을 왜곡합니다.
구분예언자적 참여정치적 개입성격불의 비판·공공선 제시권력 추구·정당 지지결과복음의 공공성 확장신앙의 세속화평가사명적 책임본질적 타락
예언자적 참여는 비판과 대안의 영성을 포함합니다.
즉, 교회는 사회의 병든 곳을 드러내되, 동시에 치유의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2. 복음의 공공성과 하나님 주권
성경은 신앙을 사적인 신념으로 제한하지 않습니다.
공동체 정의, 생명 존중, 법과 윤리, 약자 보호 등은 모두 하나님의 통치 영역입니다.
정치와 신앙은 기능적으로 구분되지만,
주권의 원천은 동일하게 하나님께 있습니다.
칼뱅은 “정치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 포함된 거룩한 사역”이라 했습니다.
즉, 교회는 정치를 배척할 수도, 지배할 수도 없으며
오직 복음적 기준으로 판단하고 비판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3. 교회의 도덕적 사명
교회의 사명은 세 가지입니다.
도덕적 나침반 — 불의와 부패를 꾸짖음
예언자적 비판자 — 진리의 관점으로 권력을 견제
화해의 중재자 — 분열된 사회에 사랑과 정의를 회복
정치화된 교회는 타락이지만,
양심을 잃은 교회는 배교입니다.


Ⅴ. 헌법적·현실적 적용 ― 신앙의 자유와 공공의 책임

1. 헌법 제20조의 의미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
이 조항은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가집니다.
① 국가권력이 교회의 신앙과 예배를 통제할 수 없다는 원칙,
② 교회가 정당정치나 선거권력을 직접 행사할 수 없다는 한계입니다.
그러나 헌법은 교회의 사회적 발언과 공익적 목소리를 금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종교의 자유 안에 포함됩니다.
따라서 교회는
“정당·선거에는 개입하지 말되,
사회정의·생명·윤리 문제에는 반드시 발언하라.”
는 균형적 책임을 져야 합니다.

2. 오늘 한국교회의 공적 책임
교회는 정당·정치권의 하수인이 되어서는 안 되며,
사회적 도덕성과 공공정의를 세우는 **‘양심의 기관’**이 되어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회복해야 할 것은 권력의 영향력이 아니라,
복음의 도덕적 신뢰입니다.
사회가 혼란할수록 교회는 “예언자적 목소리”로
진리·공의·사랑을 선포해야 합니다.


Ⅵ. 결론 ― 정교분리의 참된 의미

정교분리는 교회의 침묵 명령이 아니라,
복음의 자유를 지키는 신앙의 방파제입니다.
교회는 국가를 섬기되 하나님보다 위에 두지 않으며,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채 세상을 섬기는 하나님 나라의 대사관입니다.
“복음 없는 사회참여는 공허하고,
성경 중심 없는 교회 일치는 위험하다.”
정교분리를 바로 세우는 길은
정치로부터의 분리공공선에 대한 참여의 균형입니다.
이것이 오늘의 한국교회가 회복해야 할 공적 신앙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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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2025-09-21 (일) 12:42
분 류 자유게시판
ㆍ조회: 340      
http://www.greatkoreaunion.com/cafe/?gkuboard.562.12
“ 거짓으로 사는 사람은 진리로 사는 사람과 결코 공존할 수 없습니다. ”
거짓으로 사는 사람은 진리로 사는 사람과 결코 공존할 수 없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은 죄를 지을 자유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가 죄와 거짓 속에서 그 자유를 누리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에게 경종을 울려 돌이킬 기회를 주는 것은 해야 할 의무입니다.

복음서에 등장하는 헤롯왕의 이야기를 떠올려 보십시오.
헤롯은 침례 요한을 목 베어 그 머리를 쟁반에 담아
헤로디아의 딸에게 주는 돌이킬 수 없는 죄를 범했습니다.
그 죄악은 그의 선택이었지만,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사람들—
자칭 율법의 선생, 유대의 귀인들—은 누구 하나 그 잘못을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전혀 죄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도 요한의 피 값을 요구하실 것입니다.

어쩌면 누군가가 용기를 내어 그에게 말렸더라면
헤롯은 죄를 범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성경은 헤롯이 요한을 의인으로 생각했고,
그의 말이 아프지만 달게 여겼다고 기록합니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충언은 그에게 명분이 되었을 것이고,
죄의 길을 멈출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경고하십니다.
우리 역시 방관자로서 그때의 잘못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때가 아닌가요?
누구든지 하나님의 진리와 정의의 편에 서지 않는다면
의로운 일을 행할 힘을 잃고
죄에 순종하고 죄에 끌려다니는 비극의 인간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헤롯왕과 침례 요한의 이야기는
단순한 역사 기록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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