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리말 ”
머리말
왜 지금 “교회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를 말해야 하는가
지금 한국교회는 다시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 교회가 먼저 살아야 하며, 교회가 먼저 회개해야 한다. 교회가 먼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마땅히 돌려드려야 할 예배와 순종의 첫 자리를 회복해야 한다.
오늘 우리나라는 심각한 위기 앞에 서 있다. 가정이 무너지고 다음 세대가 방향을 잃고 있다. 정치는 극심하게 갈라지고, 사회는 서로를 미워하고 정죄하는 언어로 가득하다. 진실보다 진영의 논리가 앞서고, 나라와 공동체의 미래보다 자기편의 승리와 이익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교회도 이 위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교회는 세상을 향하여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그러나 세상의 물질주의와 성공주의, 성장주의와 권력 의존, 정파성과 지도자 숭배, 국가 우상화와 시대정신이 교회 안으로 들어와 있다.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키기보다 세상의 가치에 물들고,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인정과 조직의 생존을 앞세우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는 약화되고 있으며, 다음 세대는 교회를 떠나고 있다. 교회 안에서도 복음보다 진영의 논리가 앞서고, 신앙의 본질보다 성장과 성공, 조직과 영향력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현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먼저 세상을 꾸짖기 위하여 쓰는 책이 아니다. 정치를 정죄하기 위하여 쓰는 책도 아니며, 어느 민족이나 국가, 정당이나 정치세력을 공격하기 위하여 쓰는 책도 아니다.
이 책은 한국교회를 향한 호소이다. 세상과 나라의 잘못을 말하기 전에 교회가 먼저 자신을 살피자는 호소이며, 다른 사람과 다른 세력에게 회개를 요구하기 전에 우리 한국교회가 먼저 하나님 앞에 엎드리자는 호소이다.
필자 역시 이 모든 죄의 역사와 오늘의 한국교회 현실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다. 교회를 향하여 회개를 외치기 전에 필자 자신이 먼저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함을 고백한다. 이 책은 높은 자리에서 한국교회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글이 아니라, 한국교회의 한 사람으로서 함께 가슴을 치며 하나님께 돌아가자고 호소하는 글이다.
교회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 한다. 교회가 예배의 첫 자리를 하나님께 돌려드리고, 하나님보다 앞세운 모든 우상을 끌어내려야 한다. 교회가 묵은 누룩을 버리고 새 덩어리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성도가 살고, 가정이 살며, 다음 세대와 나라가 살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의 중심 고백은 분명하다.
오직 하나님께만 예배를,
하나님을 하나님의 자리에 모시라.
여기에서 “하나님을 하나님의 자리에 모신다”는 말은 인간이 하나님께 어떤 지위나 권위를 부여한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영원한 창조주이시며 역사의 주권자이시다.
이 말은 인간과 교회가 빼앗아 차지했던 예배와 순종의 첫 자리를 하나님께 돌려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신앙과 삶의 최종 권위로 인정하며, 하나님보다 앞세운 모든 우상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뜻이다.
1. 수년 동안 교계 현장에서 외쳐 온 회개의 메시지
필자는 이 문제를 책상 위에서 처음 발견한 것이 아니다. 수년 동안 교계의 여러 집회와 포럼, 세미나를 비롯한 다양한 자리에서 한국교회를 향하여 회개를 촉구해 왔다.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신사참배와 WCC를 비롯한 종교혼합과 우상숭배의 문제를 제기하고, 한국교회가 제1계명과 제2계명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외쳤다.
필자는 이와 관련된 자료와 입장을 WCC 고발운동본부 홈페이지(http://www.accusation.kr)에서도 지속적으로 밝히고 있다.
하나님보다 국가와 민족과 정치권력을 앞세워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하나님보다 교회와 기관의 생존을 앞세워서는 안 되며, 하나님보다 물질과 성공과 성장과 숫자를 앞세워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또한 복음의 진리와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훼손하면서까지 사람과 조직의 연합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필자는 오직 하나님께만 예배를 드려야 하며, 하나님을 하나님의 자리에 온전히 모셔야 한다고 외쳐 왔다.
그러나 집회와 포럼과 세미나를 통하여 만날 수 있는 사람의 수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에게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었지만, 현장에 오지 못한 수많은 목회자와 성도, 신학생과 다음 세대에게까지 이 내용을 충분히 전하기는 어려웠다.
한 번의 설교와 강연만으로는 성경의 원리와 역사적 사건, 유대인의 아브월 9일과 한국교회의 신사참배, 대한민국의 8·15와 9·9에 담긴 의미를 충분히 설명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그동안 여러 현장에서 설파해 온 내용을 책으로 묶어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자 한다. 이 책은 새로운 교리를 만들어 내기 위하여 쓰는 책이 아니다. 필자가 오랫동안 한국교회를 향하여 외쳐 온 회개의 메시지를 더 넓게 전하고, 현장에서 미처 만나지 못한 목회자와 성도에게 전하기 위한 책이다.
또한 다음 세대가 이 역사를 바로 알고 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책이며, 무엇보다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가 하나님께 돌아와 다시 살아나고 살아난 교회가 대한민국을 바르게 섬기게 하기 위한 책이다.
2. 이 책은 날짜를 신비화하려는 책이 아니다
이 책에서는 아브월 9일과 8·15와 9·9를 중요하게 다룬다. 그러나 이 책은 어떤 날짜 자체에 신비한 힘이 있다고 주장하려는 책이 아니다.
아브월 9일이라는 날짜가 성전을 파괴한 것이 아니며, 여덟째 달 열다섯째 날이라는 날짜가 여로보암으로 하여금 거짓 절기와 거짓 예배를 만들게 한 것도 아니다. 9월 9일이라는 날짜가 스스로 역사적 사건을 만들어 낸 것도 아니다.
날짜는 하나님이 아니며 기념일도 하나님이 아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역사 속에서 일어난 사건을 기억하게 하시고, 그 기억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깨우시는 경우가 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절기와 기념일은 단순한 달력의 표시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기억하고, 자신들의 죄와 하나님의 은혜를 다음 세대에게 가르치는 신앙의 표지였다.
유대인의 아브월 9일도 그러하다. 아브월 9일은 유대인의 역사 속에서 불신앙과 성전 파괴, 나라 상실과 추방의 애통을 기억하는 날이다. 날짜 자체를 숭배하는 날이 아니라,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두지 않은 역사가 어떠한 상실을 가져왔는지를 기억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날이다.
본서는 이 아브월 9일의 애통과 경고를 한국교회와 대한민국의 역사에 비추어 보고자 한다.
성경의 여덟째 달 열다섯째 날에는 여로보암이 자기 마음대로 만든 절기를 시행하고 금송아지 앞에서 거짓 예배를 드렸다. 정치권력이 왕국의 생존을 위하여 예배를 왜곡하고 제1계명과 제2계명을 무너뜨린 사건이었다.
한국의 8·15는 이와 다른 의미를 지닌다. 1945년 8월 15일, 우리 민족은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에서 해방되었다. 신사참배를 강요받던 한국교회에도 하나님께만 예배할 수 있는 자유가 다시 주어졌다.
그러므로 한국의 8·15는 해방의 은혜이다. 단순히 정치적 지배에서 벗어난 날만이 아니라, 신사참배의 강요에서 풀려나 참된 예배로 돌아오라고 주신 기회이며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에 다시 허락하신 회개의 은혜이다.
8·15는 은혜이며, 은혜는 감사로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은혜를 받았다고 과거의 죄가 자동으로 정리되는 것은 아니다. 외적인 강요가 사라졌다고 마음과 교회 안의 우상숭배까지 저절로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해방은 회개의 필요를 없앤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회개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신 은혜였다.
3. 왜 9월 9일을 “한국의 아브월 9일”이라 부르는가
1938년 9월 9일, 신사참배 결의를 위한 조선예수교장로회 제27회 총회가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개회되었다.
회의 절차상 신사참배 안건이 다음 날 처리되었다 하더라도, 그 결의는 9월 9일 개회된 제27회 총회에서 이루어진 결의이다. 결의안이 첫날 처리되었는가, 다음 날 처리되었는가 하는 절차적 차이가 그 총회의 역사적·신앙적 본질을 바꾸지는 않는다.
제27회 총회는 신사참배 문제를 처리하고 공교회의 이름으로 받아들이는 결정적인 총회였다. 그 총회에서 한국 장로교회는 신사참배를 종교행위가 아니라 애국적 국가의식으로 규정하고 신사참배를 받아들이는 결의를 하였다.
그러나 국가가 국민의례라고 부른다고 우상숭배가 국민의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총회가 기독교 교리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결의한다고 하나님의 계명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사람의 결의가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설 수는 없다.
한국교회는 하나님보다 국가권력을 두려워하였고, 하나님보다 교회와 학교와 기관의 생존을 앞세웠다. 하나님께만 드려야 할 경배의 자리를 천황과 제국의 질서 앞에 내어 주었다.
일제 경찰의 압박과 위협은 반드시 고려해야 할 역사적 배경이다. 그러나 경찰의 압박이 신사참배를 정당화하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같은 압박 아래에서도 하나님께만 예배하기 위하여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감옥과 고문과 죽음을 감당한 믿음의 선배들이 있었다.
강요는 죄의 무게를 헤아릴 때 고려해야 할 역사적 상황이지만, 강요가 우상숭배를 의롭게 만들지는 못한다. 압박은 배경이지 면죄부가 아니다.
1938년 9월 9일 개회된 총회에서 한국교회의 영적 방어선이 공적으로 무너졌다. 개인의 은밀한 타협이 아니라 공교회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결의였다.
그로부터 정확히 10년 뒤인 1948년 9월 9일, 북한 정권이 수립되었다. 북한에는 무신론적 이념과 수령 중심의 체제가 세워졌고, 북한의 교회와 성도들은 심각한 억압과 박해를 겪게 되었다. 이후 분단은 고착되었고 한반도는 전쟁과 핵무장의 위협 아래 놓이게 되었다.
본서는 두 사건 사이에 역사학적으로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입증되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신사참배 결의 하나가 북한 정권의 수립을 자동으로 발생시켰다는 기계적인 공식을 주장하려는 것도 아니다.
한반도의 분단과 북한 정권 수립에는 일본 제국주의의 패망과 미·소 군대의 진주, 냉전체제와 강대국의 정책, 남북 정치세력의 대립을 비롯한 여러 역사적 요인이 작용하였다.
그러나 본서는 정치적·국제적 원인만을 설명한 뒤, 이 역사가 한국교회에 던지는 영적 질문을 지워 버리지 않는다.
필자는 1938년 9월 9일 신사참배 결의를 위한 총회가 개회된 역사와 1948년 9월 9일 북한 정권이 수립된 역사를 성경의 빛 아래 함께 바라본다. 그리고 9월 9일을 “한국의 아브월 9일”이라고 명명하여 사용하고자 한다. 이하 본서에서는 이를 “한국의 아브월 9일”이라 칭한다.
이것은 유대인의 아브월 9일과 한국의 9월 9일이 같은 달력 날짜라는 뜻이 아니며, 고대 이스라엘과 한국교회를 기계적으로 동일시한다는 뜻도 아니다. 또한 9월 9일이라는 숫자에 독립적인 심판의 능력이 있다는 운명론이나 수비학적 주장도 아니다.
“한국의 아브월 9일”은 한국교회가 신사참배와 예배 붕괴의 역사를 기억하고, 분단과 북녘의 고통을 가슴에 품으며, 하나님 앞에서 애통하고 회개하도록 필자가 붙인 신앙적·해석적 명칭이다.
유대인의 아브월 9일이 불신앙과 성전 파괴, 나라 상실과 추방을 기억하게 한다면, 한국의 9월 9일은 신사참배와 공교회의 무너짐, 분단과 북한 정권 수립을 기억하게 한다.
9·9는 경고이며, 경고는 회개로 받아야 한다. 8·15는 은혜이고 9·9는 경고이다. 은혜는 감사로, 경고는 회개로 받아야 한다.
4. 신사참배는 한국교회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우상숭배였다
신사참배는 단순한 국민의례가 아니었다. 신사참배는 우상숭배였으며, 제1계명과 제2계명의 문제였다.
신사참배는 하나님보다 천황과 국가권력과 생존을 앞세운 죄였으며, 한국교회가 하나님께만 드려야 할 예배의 첫 자리를 온전히 지키지 못한 죄였다.
이 책의 제1권에서는 8·15와 9·9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범위 안에서 신사참배의 핵심을 다룬다.
신사참배의 역사적 전개와 교회 안 예배 질서의 전복, 교단과 노회의 책임, 신사참배 거부자들의 고난과 출옥성도들의 회개 촉구, 해방 이후 공적 회개의 문제는 제3권 『하나님을 하나님의 자리에』에서 더욱 상세하게 다룰 것이다.
그러나 제1권에서 신사참배를 제한된 범위 안에서 다룬다고 해서 그 죄의 무게까지 가볍게 말해서는 안 된다.
한국교회는 공교회의 이름으로 신사참배를 받아들였다. 그러므로 그 역사는 공적으로 기억되어야 하며, 그 죄의 본질은 다음 세대에게 분명히 가르쳐져야 한다. 공적으로 결의한 죄는 공적으로 정리되어야 하고, 공적인 사건은 공적으로 풀어야 한다.
이 말은 이미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회개한 개인이 다시 용서받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보혈은 완전하며 하나님의 용서는 완전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용서가 완전하다는 사실이 교회의 역사적 책임과 다음 세대를 가르쳐야 할 책임까지 없애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결의를 바로잡고, 그 죄가 왜 우상숭배였는지를 밝히며, 다시는 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도록 가르치는 것은 공교회가 감당해야 할 책임이다.
이 책은 과거의 사람들을 정죄하려는 책이 아니며, 오늘의 우리가 과거의 사람들보다 의롭다고 자랑하려는 책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 안에 같은 죄의 뿌리가 여전히 남아 있음을 고백하는 책이다.
오늘 우리에게 같은 압박이 닥친다면 과연 다르게 행동할 수 있는가. 교회와 기관의 문을 닫아야 한다는 위협 앞에서 하나님께만 예배할 수 있는가. 재정과 지위와 사회적 인정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 앞에서 진리를 지킬 수 있는가.
자기편의 정치권력이 교회를 이용하려 할 때 이를 거절할 수 있는가. 세상의 흐름과 국제적 인정을 얻기 위하여 복음의 유일성과 성경의 권위를 흐리라는 압력 앞에서 견딜 수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교만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이 범죄하였다”고만 말해서는 안 된다. 우리 한국교회가 범죄하였고, 우리의 공교회가 하나님께만 드려야 할 예배의 첫 자리를 지키지 못하였다.
우리 안에도 하나님보다 권력과 생존과 물질과 성공과 사람의 인정을 앞세우는 묵은 누룩이 남아 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함께 회개해야 한다.
5. 역사적 사실과 신앙적 해석을 함께 붙들어야 한다
이 책은 성경과 역사, 유대 전승과 한국교회의 사건을 함께 다룬다. 그러므로 사실은 사실대로 정확하게 밝혀야 한다.
성경에 직접 기록된 사실과 유대 전승은 구분해야 하며, 역사적으로 확인된 사건과 후대의 증언도 구분해야 한다. 사건이 발생한 날짜와 명령일, 시행일과 완료일도 필요한 경우 구분해야 한다.
확인되지 않은 숫자나 과장된 인용으로 회개의 메시지를 세우려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진리의 하나님이시며, 거짓과 과장으로 진리를 변호할 수 없다.
그러나 사실과 신앙적 해석을 구분한다는 이유로 역사의 영적 의미까지 제거해서도 안 된다. 역사는 단순한 날짜와 사건의 모음이 아니다. 교회는 성경의 빛 아래 역사를 살피고, 그 역사 앞에서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묻고 계시는지를 들어야 한다.
필자는 이 책에서 역사학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과, 저자가 성경의 빛 아래 붙드는 신앙적 해석을 구분하여 밝히고자 한다. 그러나 그 구분을 이유로 다음의 고백을 약화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문제의 뿌리는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두지 않은 죄이다. 에덴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 판단을 앞세웠고, 가나안 앞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약속보다 두려움을 앞세웠다.
여로보암은 하나님보다 왕권과 국가의 생존을 앞세워 거짓 예배를 만들었으며, 이스라엘은 우상숭배와 불순종의 길에서 성전과 나라와 땅을 잃는 애통을 경험하였다.
한국교회도 신사참배의 시험 앞에서 하나님보다 국가권력과 생존을 앞세웠다. 오늘의 한국교회도 하나님보다 물질과 성공과 성장과 숫자, 정치권력과 정파, 지도자와 국가, 종교혼합과 시대정신을 앞세울 수 있다.
하나님보다 앞세운 모든 것이 우상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이 책이 붙드는 성경적 경고이다.
6. 모든 결론은 정죄가 아니라 회개와 회복으로 향해야 한다
이 책에서 다루는 역사는 무겁다. 불신앙과 성전 파괴, 나라 상실과 추방, 신사참배와 분단의 역사를 다룬다. 그러나 이 책의 마지막 목적은 정죄가 아니라 회개와 회복이며 하나님과의 화목이다.
이 책의 목적은 한국교회를 공격하고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가 하나님께 돌아와 다시 살아나게 하는 것이다.
필자가 한국교회의 죄를 말하는 이유는 교회를 미워하기 때문이 아니라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나라의 위기를 말하는 이유도 나라를 정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의사는 환자를 미워해서 병을 진단하지 않는다. 환자를 살리기 위하여 병의 원인을 밝힌다. 죄를 죄라고 말하지 않고서는 참된 회개가 시작될 수 없다. 그러나 죄만 말하고 복음의 용서와 회복을 말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온전한 메시지가 아니다.
한국교회의 회복은 과거의 죄를 기억하고 인정하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죄를 인정하고, 복음 안에서 주시는 사죄의 은혜를 받아야 한다. 성령께서 우리의 굳은 마음을 깨뜨리시고 교회를 새롭게 해 주셔야 한다.
교회의 회복은 인간의 결심이나 조직이나 운동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새롭게 될 때 참된 회복이 시작된다.
회개는 절망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과 다시 화목하게 되는 은혜의 길이다. 하나님께 돌아가는 사람에게 용서가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 사죄의 은혜가 있으며, 묵은 누룩을 버리고 새 덩어리가 되는 길이 있다.
애통의 날이 영원히 애통으로만 남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경고를 통하여 멸망만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라고 부르신다.
그러므로 9·9를 한국의 아브월 9일이라고 명명하는 목적도 절망하게 하는 데 있지 않다. 회개하게 하고 한국교회가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며, 하나님께서 애통의 날을 회복의 날로 바꾸어 주시기를 간구하는 데 있다.
경고는 버리셨다는 선언이 아니라 돌아오라는 부르심이다.
7. 『교회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3권의 시리즈로 이어진다
본 총서 『교회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각 권의 주제와 목적에 따라 제1권 『새 덩어리가 되라』와 제2권 『교회의 사명과 실천』과 제3권 『하나님을 하나님의 자리에』로 이어진다.
제1권은 기본편이다.
에덴에서 시작된 죄와 가나안 앞에서 드러난 불신앙, 아브월 9일의 애통과 반복된 상실의 역사, 여로보암의 거짓 예배, 한국교회의 신사참배, 8·15의 은혜와 9·9의 경고, 그리고 묵은 누룩을 버리고 새 덩어리가 되어야 할 이유를 다룬다.
제1권은 그 자체만으로도 독립된 한 권의 책이 되도록 구성하였다. 그러므로 제1권의 끝에는 기본편 전체의 메시지를 종합하는 맺음말을 둔다.
제2권은 실천편이다.
제1권에서 선포한 회개의 메시지를 전국교회의 예배와 공동체적 회개, 시민의 책임과 지도자 양성, 정치제도와 공공질서의 회복으로 연결한다.
광복절을 맞아 전국교회가 각자의 예배 자리에서 함께 드릴 나라사랑 연합예배 제안과 공통 성경 본문 및 설교 방향 자료, 포럼 발표 원고, 공동 회개기도문과 공동 선언문을 비롯한 구체적인 실천 자료는 제1권에 수록하지 않고 제2권에 배치한다.
그러나 실천계획이 모든 것을 대신할 수는 없다. 행사보다 먼저 회개가 있어야 하며, 조직보다 먼저 예배가 회복되어야 한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인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교회가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은 채 실천계획만 세운다면, 그것도 또 하나의 인간 중심적인 운동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제1권이 먼저이며, 회개가 먼저이고, 하나님이 먼저다.
제3권은 회복편이다.
제1권과 제2권에서 제기한 회개와 실천의 문제를 더 깊이 들어가, 하나님보다 앞세운 사람과 조직과 권력과 성공과 생존의 문제를 살피고, 한국교회가 오직 하나님을 예배와 신앙과 삶의 첫 자리에 모시는 길을 다룬다.
8. 교회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
“교회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말은 교회가 국가권력을 장악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교회가 특정 정당이나 정치세력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뜻도 아니며, 교회가 정치적 특권을 가져야 나라가 산다는 말도 아니다.
이 말은 교회가 먼저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하며, 하나님께 돌아가 하나님께만 예배하는 교회로 회복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교회가 권력과 돈과 이념의 포로가 되면 세상을 향하여 진리를 말할 수 없다. 교회가 자기편의 죄를 덮고 상대편의 죄만 책망하면 공의와 진실을 말할 자격을 잃는다. 교회가 성장과 성공과 조직의 생존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타협하면 세상을 밝힐 빛을 잃는다.
교회가 먼저 살아야 한다. 교회가 살아야 성도가 살고, 성도가 살아야 가정이 살며, 가정이 살아야 다음 세대가 산다. 다음 세대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 교회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
그러나 교회가 사는 길은 세상의 권력을 얻는 데 있지 않으며, 사람의 수가 많아지는 데만 있지 않다. 교회의 이름과 영향력이 높아지는 데 있는 것도 아니다.
교회가 사는 길은 하나님께 돌아가는 데 있고, 하나님께만 예배하는 데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앙과 삶의 최종 권위로 붙들고, 하나님보다 앞세운 모든 우상을 끌어내리며, 묵은 누룩을 버리고 새 덩어리가 되는 데 있다.
필자가 바라는 나라의 회복은 대한민국이 단지 더 강하고 부유한 나라가 되는 데 있지 않다. 필자의 마지막 소원은 한국교회가 진실로 회개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이다.
회개한 교회로 말미암아 이 민족의 분열과 상처가 치유되고, 대한민국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자유와 평화의 통일을 이루기를 소망한다.
통일된 대한민국이 더욱 굳건하고 부강한 나라가 되어, 그 힘과 자원과 인재를 자신만을 위하여 사용하지 않고 세계의 고통받는 이웃을 섬기며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귀하게 쓰임 받기를 기도한다.
이 나라가 받은 은혜로 열방을 섬기고, 한국교회가 다시 선교의 사명을 회복하여 세계복음화에 크게 기여하는 것, 이것이 필자가 평생 품어 온 기도이며 이 책을 통하여 다음 세대에 남기고 싶은 소망이다.
이것이 필자가 수년 동안 한국교회를 향하여 외쳐 온 메시지이며, 현장의 한계를 넘어 책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려는 이유이다. 또한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와 대한민국을 살리고자 이 책을 세상에 내놓는 이유이다.
8·15는 은혜이다.
9·9는 경고이다.
9월 9일은 한국교회가 기억하고 회개해야 할
“한국의 아브월 9일”이다.
은혜는 감사로 받아야 하고, 경고는 회개로 받아야 한다.
한국교회는 하나님보다 앞세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묵은 누룩을 버리고 새 덩어리가 되어야 한다.
오직 하나님께만 예배를,
한국교회는 회개와 순종으로.
하나님을 하나님의 자리에.
교회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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