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2026년 4월 5일 오후 4시,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순복음교회 본당에서 한국교회 73개 연합단체의 이름으로 드려진 ‘2026 한국교회 부활절 연합예배’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태를, 한국교회 역사에 깊은 오욕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중대한 사건으로 규정하며, 이를 엄숙히 “2026년 부활절 예배 훼절사건”으로 선언한다.
부활절은 성탄절과 더불어 전 세계 기독교회의 최대 절기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심으로 인류 구원의 완성을 선포하신 가장 거룩한 날이다.
부활절은 단지 절기적 기념일이 아니라, 죽음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에게 영원한 생명과 구원의 완성을 확증하신 날이다.
이 날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선포하는 승리의 날이며, 교회의 존재 이유와 복음의 핵심을 가장 분명히 드러내는 날이다.
그러므로 부활절 예배는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와 승리를 선포하며, 죄 사함과 영원한 생명의 은혜를 감사함으로 드려져야 할 거룩한 예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번 부활절 연합예배는 경건과 거룩함, 회개와 감사가 넘치는 예배가 아니라, 예배의 본질이 흐려지고 사람을 기쁘게 하는 분위기와 정치적 메시지가 중심에 놓인 참람한 사건으로 비쳐지게 되었다.
특히 현직 대통령 이재명 대통령이 축사를 전하는 가운데, 대회장 이영훈 목사는 대통령을 향하여 “가장 무거운 짐을 짊어지신 분”이라고 소개하며 공개적인 찬양성 발언을 하였고, 소강석 목사는 환영사와 진행 과정에서 대통령을 향한 성도들의 박수를 직접 유도하며 박수에 소극적인 참석자들에게 압박성 발언을 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만이 중심이 되어야 할 거룩한 강단을 사람 중심의 무대로 전락시켰다.
이로 인해 부활절 강단의 거룩성과 교회의 정치적 독립성이 심각하게 훼손되었으며, 예배가 하나님을 높이는 성례의 자리가 아니라 특정 인물을 위한 공적 이미지 제고의 장으로 비쳐지게 되었다.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누구를 위한 예배였는가.
과연 하나님께 드려진 예배였는가, 아니면 사람을 위한 무대였는가.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인공이셔야 할 자리에서 사람이 중심이 되고, 박수와 호응과 미화의 언어가 강단을 채운 것은 한국교회 역사 앞에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사건이다.
목회자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부름받은 종으로서 말씀 선포와 성례 집례, 죄에 대한 책망과 회개 촉구의 사명을 감당하는 자이다.
목사는 사람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이며, 사람의 환심을 사는 직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대언하는 거룩한 직분이다.
그러므로 목회자의 입술은 권력자를 찬양하는 도구가 아니라, 시대의 죄를 책망하고 회개를 선포하는 예언자의 입술이어야 한다.
한국교회는 역사적으로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순교적 신앙을 지켜온 피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수많은 신앙의 선배들은 국가 권력 앞에서도 교회의 양심을 굽히지 않았고, 하나님 외의 그 어떤 권세에도 무릎 꿇지 않았다.
교회의 순결한 전통은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도 이어져 왔다.
6·25 전쟁 중 부산 피난 시절 부활절 예배에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참석하였으나, 설교 강단이 아닌 아래 단에서 인사하게 하였던 교회의 질서와 경외심은 오늘날 우리에게 깊은 교훈을 준다.
또한 4세기 교부 암브로시우스는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무고한 시민 학살 이후 부활절 예배에 참석하려 하였을 때, 회개 없는 황제의 입장을 막아섰다.
그는 목숨을 걸고 강단의 거룩성과 교회의 예언자적 사명을 지켰다.
교회는 권력의 비위를 맞추는 기관이 아니라, 필요할 때는 황제조차 책망하는 예언자적 공동체임을 교회사는 분명히 증언한다.
오늘 우리가 직면한 현실 또한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교회는 국가와 사회를 위해 기도할 수 있으며, 지도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성경적 책임이다.
그러나 교회가 권력의 도구가 되거나, 강단이 권력자에 대한 찬양과 면죄의 공간으로 전락하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우리는 여기서 정교분리, 곧 정경분리의 원칙을 분명히 천명한다.
정교분리는 교회의 침묵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어떤 정치 권력에도 예속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대를 책망하며 공의를 외쳐야 한다는 신학적 원칙이다.
따라서 특정 정치 권력 앞에서 교회의 강단이 찬양과 호응의 자리로 사용된 것은 정교 질서를 훼손한 중대한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