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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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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 류 자유포럼
   
“ 한국 기독교의 영웅들 (2편) 1937년 고려인 강제이주와 한국 기독교의 숨은 영웅들 ”
한국 기독교의 영웅들 (2편)

1937년 고려인 강제이주와 한국 기독교의 숨은 영웅들


1. 서론 – 잊혀진 역사의 한 페이지

오늘 우리는 한국 기독교사에서 제대로 조명되지 못한, 그러나 누구보다 뜨겁게 신앙을 지켜낸 이들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들은 이름 없는 선교사도 아니었고, 신학자도 아니었으며, 유명한 지도자도 아니었습니다.
1937년 스탈린의 명령 하나로 한밤중에 삶의 모든 것을 잃고 광야로 내던져진 17만 고려인들, 바로 그들이 오늘의 주제입니다.


2. 역사적 배경 –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1937)

2-1. 강제 이주 명령
1937년 8월 21일, 스탈린은 ‘극동지역 한인 강제이주령’을 발표했습니다.
이 명령은 단순한 행정 조치가 아니라, 소련 체제 내 첫 대규모 민족 강제추방 정책이었으며,
그 대상은 연해주 일대에 정착해 70여 년 동안 농업·교육·상업·문화·신앙을 발전시켜온 한인들이었습니다.

2-2. 이주 과정의 비극
이들은 사전 통보조차 없이 군인들에 의해 집에서 끌려 나왔습니다.
그리하여 **17만 명이 화물칸에 실려 6,000km를 이동하는 ‘죽음의 열차’**에 올라탔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약 3만 명이 굶주림과 질병, 추위로 사망했습니다.
이 시기는 고려인들이 “살아 있는 채로 장례를 치른 시간”으로 불릴 정도였습니다.

2-3. 도착지: 중앙아시아 5개 지역
이주된 고려인들은
• 카자흐스탄,
• 우즈베키스탄,
• 키르기스스탄,
• 타지키스탄,
• 투르크메니스탄
등 중앙아시아 5개 광야 지역에 강제 분산 배치되었습니다.
이곳은
“식량 없음, 거처 없음, 기반 없음”
그야말로 버려진 사막이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역사학자는 스탈린의 명령을 “사실상의 집단 사형 선고”로 평가합니다.


3. 광야에서 시작된 신앙 공동체 — 고려인의 ‘재창조’

3-1. 토굴과 판자 교회
그 혹독한 환경에서 고려인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집을 짓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얼어붙은 땅을 파서 토굴을 만들고,
그 위에 판자를 이어 붙여 교회를 가장 먼저 세웠습니다.
이는 단순한 종교 활동이 아니라,
“하나님을 붙잡지 않으면 이 광야에서 우리 민족은 사라진다”는 절박한 생존의 신앙 선언이었습니다.

3-2. 바람이 스며드는 교회, 그러나 꺼지지 않은 기도
틈새로 바람이 불어오고,
땅바닥에는 흙먼지가 날리고,
눈과 비가 스며드는 그 초라한 예배당에서
그들은 절망의 밤마다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주님, 이 민족을 살려 주옵소서.”
“우리 자녀와 다음 세대를 일으켜 주옵소서.”
이 광야의 기도는
고려인 공동체를 지탱한 심장 박동이었습니다.

3-3. 신앙의 유산이 만든 새로운 민족
역사는 냉혹했지만,
그 광야의 교회는 놀라운 결과를 낳았습니다.
강제이주로 흩어진 한인들은
• 언어를 지켰고,
• 문화를 지켰고,
• 정체성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앙을 지켰습니다.
이들은 훗날 중앙아시아의 가장 강력한 개신교 공동체로 성장했고,
복음의 씨앗이 중앙아시아 곳곳에서 자라게 하는 영적 거점이 되었습니다.


4. 한국 선교의 새로운 길 – ‘버려진 광야’가 선교지로
하나님은 인간의 절망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여셨습니다.
1940~60년대 이후,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스탄의 고려인 공동체는
한국 선교사들의 첫 번째 발판이 되었고,
중앙아시아 선교의 핵심 허브로 자리 잡았습니다.
처음에는 추방된 땅이었지만,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그 땅을 선교의 전초기지로 사용하셨습니다.
이는 역사 속에서 반복되는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인간의 실패처럼 보이는 자리에서
하나님은 구속의 역사를 다시 세우십니다.


5. 결론 – 이름 없는 고려인들이야말로 ‘한국 기독교의 숨은 영웅들’

우리는 종종 역사 속 영웅들을 말할 때
유명한 지도자나 기록에 남은 인물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1937년의 고려인들은
누구보다 큰 눈물과 희생으로 신앙을 지켜냈고,
광야를 교회가 세워지는 땅으로 바꿨으며,
민족 정체성과 복음의 빛을 후대에 남겼습니다.
이름은 없어도, 기록은 없어도,
그들의 눈물과 기도는 이 민족의 영적 유산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1937년 고려인, 그 무명의 신앙인들이야말로
한국 기독교사의 진정한 영웅들입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붙든 신앙의 증거이며,
광야에서 다시 태어난 민족의 역사입니다.


박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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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 류 자유포럼
   
“ 한국 기독교의 영웅들 (1편) “하와이와 미주·남미로 흩어진 디아스포라와 우남 이승만” ”
한국 기독교의 영웅들 (1편)

“하와이와 미주·남미로 흩어진 디아스포라와 우남 이승만”


1. 서론 – 나라가 무너질 때, 백성은 어디로 가야 했는가?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한국 기독교의 영웅들”을 이야기하면서
조국 땅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을 기억하려 합니다.
나라가 기울고, 일제의 침탈이 거세지던 대한제국 말기와 일제 강점기의 초입,
수많은 조선의 백성들이 하와이, 미본토, 멕시코, 쿠바, 남미 전역으로 흩어져 나갔습니다.
그 길은 ‘이민’이 아니라, 많은 경우
**‘가난과 식민지의 압박이 밀어낸 탈출’**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 밭을 갈던 농민,
• 빚에 쫓기던 가장,
• 새로운 길을 찾던 청년들,
그리고 우남 이승만과 같은 기독 지성인·지도자들
저마다 다른 길로 바다를 건넜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흩어진 사람들, 디아스포라의 신앙과 눈물 속에서
한국 기독교의 또 다른 영웅들을 보고자 합니다.


2. 하와이로 간 사람들 – 1903년, 사탕수수 밭으로 떠난 조선인들

2-1. 첫 하와이 이민
1903년 1월 13일, 첫 번째 큰 무리가
조선 땅을 떠나 하와이로 향합니다.
이들은 대부분 사탕수수·파인애플 농장 노동자로 모집된 사람들이었습니다.
1903년부터 1905년 사이, 약 7,200명 이상의 조선인
하와이 여러 섬의 플랜테이션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들이 떠난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 가난, 기근, 빚
• 대한제국 말, 정치적 혼란과 일제의 압박
• “하와이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불확실한 약속
배 위에서 그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을 안고
미지의 땅을 향해 떠났습니다.

2-2. 플랜테이션의 현실
하와이에 도착한 그들을 기다린 것은
낭만적인 ‘이민자의 꿈’이 아니라
새벽부터 해질 때까지 이어지는 강도 높은 노동과 언어·문화의 장벽이었습니다.
• 낮에는 사탕수수밭에서 피와 땀을 쏟고,
• 밤에는 허리와 어깨를 펴지도 못한 채,
• 낯선 땅의 하늘을 보며
가족과 조국을 떠올렸습니다.
그러나 그 척박한 환경 속에서
이들을 붙잡아 준 것이 있습니다.
바로 신앙 공동체, 교회였습니다.


3. 하와이 디아스포라와 교회 – 광야에서 다시 세운 공동체

하와이의 한인 노동자들 곁에는
미국 선교사들과 함께 세워진 한인 교회와 기도 모임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 언어도 통하지 않고,
• 법적 보호도 미약하고,
• 인종차별과 착취 속에 있었지만,
주일이 되면 모여 찬송을 부르고,
성경을 읽고,
서로의 눈물을 닦아 주었습니다.
여기에서 신앙은 단순한 종교가 아니었습니다.
고향을 잃은 사람들에게
**신앙은 곧 ‘잃어버린 조국을 대신하는 영적 고향’**이었습니다.


4. 우남 이승만 – 감옥의 청년에서, 디아스포라의 영적·정치적 지도자로

4-1. 감옥에서 만난 하나님
우남 이승만은 젊은 시절
조선의 정치개혁과 독립을 꿈꾸다가 투옥되었고,
그 감옥에서 신약성경을 읽으며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입니다.
그의 신앙은 개인 구원에 머물지 않고,
민족의 구원과 자유를 향한 비전으로 자라났습니다.

4-2. 미국 유학과 하와이 정착
1904년 미국으로 건너간 이승만은
워싱턴·하버드·프린스턴에서 학위를 받으며,
서구 민주주의·국제정치·기독교 문명을 깊이 연구했습니다.
이후 1913년, 그는 하와이로 옮겨
• 교육자(한인 중앙학원),
• 출판인(태평양 잡지),
• 한인 YMCA 지도자,
• 그리고 기독교 지도자로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1918년에는 하와이에 **한인기독교회(또는 한인 크리스천 처치)**를 세우며,
이민 노동자들과 디아스포라 청년들을 향해
복음과 민족의 비전을 함께 전했습니다.

4-3. 교회와 독립운동의 접점
하와이의 한인 교회와 기독교 공동체는
단순한 종교 모임이 아니라
독립운동 자금과 인재, 조직이 생겨나는 거점이었습니다.
• 예배당은 동시에 민족 집회 장소가 되었고,
• 강단에서 선포되는 설교는 성경 강해이자, 독립의 메시지였으며,
• 기도 모임은 해방을 위한 눈물의 중보 자리였습니다.
이승만은 이 디아스포라 공동체 한가운데서
“신앙 · 자유 · 민족의 길”을 연결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5. 북미·남미로 이어진 확산 – 멕시코·쿠바·미본토의 한인들

5-1. 멕시코와 쿠바로 간 한인들
1905년, 약 1,000여 명의 조선인들이 ‘SS 일포드(SS Ilford)’호를 타고 멕시코 유카탄 반도로 향합니다.
그들은 에네켄(henequen) 농장 노동자로 끌려갔습니다.
계약과 현실은 달랐고,
열대의 혹독한 노동과 차별 속에서 많은 이들이 병들고 쓰러졌습니다.
이후 일부는 다시 쿠바로 이동하며
설탕 농장 등지에서 노동을 이어갔고,
그 중 상당수가
기독교 신앙을 붙들고 작은 예배 모임을 이루며
정체성과 언어, 믿음을 지켜냈습니다.

5-2. 미 본토로 향한 디아스포라
하와이와 멕시코, 쿠바에서 일부 한인들은
• 미국 본토(캘리포니아, 뉴욕 등)로 옮겨가
• 한인 감리교·장로교 교회, 한인 기독교회들을 중심으로
**신앙과 민족 의식을 이어갔습니다.**
이 한인 기독교 공동체들은
이후 3·1운동 이후의 임시정부 지원, 독립운동 후원,
그리고 해방 후 한국과의 영적·물질적 네트워크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6. 디아스포라와 한국 기독교 – 왜 이들이 ‘영웅’인가

우리가 오늘 하와이·북미·남미로 흩어진 이 시대의 백성들
“기독교의 영웅들”이라 부르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 그들은 나라를 잃은 백성이었지만, 신앙의 정체성을 지켜냈습니다.
• 언어도, 국적도, 법적 보호도 없는 상황에서
•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하나의 민족”이라는 믿음을 지켰습니다.
• 그들은 흩어진 자리에서 ‘선교사적인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 디아스포라의 한인 교회들은
그 지역 사회와 다른 민족들을 향한 복음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 그들의 눈물과 노동이, 훗날 대한민국 건국과 교회 성장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 독립운동 자금과 인재,
• 해방 후 구호와 선교,
• 그리고 오늘의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들까지
많은 흐름이 바로 이 세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한가운데
감옥의 청년에서, 디아스포라 공동체의 기독교 지도자로 부름받았던 우남 이승만이 서 있습니다.
그는 흩어진 백성들 속에서
복음과 자유, 민족의 길을 함께 모색한 지도자였습니다.


7. 결론 – 바다 건너 눈물로 뿌려진 씨앗

사랑하는 여러분,
한국 기독교의 역사를 말할 때,
우리는 조국 땅의 교회와 순교자들만이 아니라,
• 하와이의 사탕수수 밭에서 흙먼지를 뒤집어쓴 노동자들,
• 멕시코와 쿠바의 뜨거운 농장에서 쓰러져 갔던 이름 없는 한인들,
• 그들 곁에서 말씀을 가르치고, 예배를 세우고, 독립과 자유를 말하던 지도자들,
그리고 그들 가운데 서 있었던 우남 이승만을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의 삶과 눈물, 땀과 기도는
단지 “해외 이민사”가 아니라
한국 기독교와 민족의 역사를 밖에서부터 떠받친 영적 토대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한국 기독교의 영웅들 가운데에는,
조국을 떠나 하와이와 미주·남미로 흩어져 간
디아스포라의 백성들과 그들을 섬긴 지도자들이 있다.”
그들이 흘린 눈물 위에
오늘 한인 교회와 대한민국,
그리고 전 세계에 흩어진 한국 기독교 디아스포라가 서 있습니다.

박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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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 류 자유포럼
   
“ 국회 포럼 발표 - 기독교 사회적 책임은 무엇인가? ”
일 시 : 25년 10월 21일 오전 10시
❍ 일 시 :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실
❍ 주 최 : 국민의힘 국회의원 최수진
❍ 주 관 : 기독교사회책임 : 
❍ 행사명 : 기독교 사회적 책임은 무엇인가?

(1) 사회: 강신성
(2) 인사말 : 최수진, 강사근
(3) 축사 : 황교안, 현베드로
(4) 발제 : 박동호목사
(4) 대담 좌장 : 강사근
      대담 패널 : 김영일, 최충하. 심만섭. 


기독교 사회적 책임
(복음의 본질 위에서)


1. 서론
– 왜 교회는 사회적 책임을 가져야 하는가?

오늘 우리는 정치적 갈등, 경제적 양극화, 윤리의식 저하, 그리고 교회 신뢰의 급격한 약화 등 중첩된 위기와 변화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한국사회는 최근 이념 대립, 세대 갈등, 경제 불평등, 지도층의 도덕성 상실, 언론의 편향과 가짜 뉴스 확산, 공동체 신뢰 붕괴라는 총체적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법과 정의보다 이익이 우선되고, 가정과 교육의 가치가 무너지는 현실에서 청년 세대는 신앙과 삶의 방향을 잃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2023년 공식 조사에서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는 19.1~20.1% 수준이며, 청년 세대의 모태신앙 비율은 수도권 20% 미만, 지방 12% 이하로 급감했습니다. 1)
이 수치들은 단순히 자료에 그치지 않고 한국교회의 영적 위기이자 사회적 경고로 작동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교회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정직하고 깊게 물어야 합니다.
“교회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교회는 시대의 변화와 사회적 유행, 트렌드에 따라 사명을 바꾸지 않습니다. 오직 성경의 진리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사명과 책임을 실제 삶에서 실천하는 본질적 공동체가 바로 교회이며, 그 존재 이유입니다.


2. 복음주의 신학의 사회적 책임 강조

복음주의 신학자 존 스토트(John Stott)는 말했습니다.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은 복음과 분리될 수 없다.”2) 이것은 오늘 교회가 세상 속에서 정체성과 사명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가에 대한 본질적 선언입니다.
교회는 사회봉사와 참여가 복음보다 앞서거나, 복음을 대신해서는 안 됩니다.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하나님 나라, 그리고 성경 말씀의 권위 위에서 세상을 섬김의 태도로 살아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마 5:13–16).
이 말씀은 단순히 착하게 살라는 뜻이 아니라, 진리에 뿌리를 둔 믿음이 실제 행동과 삶에서 드러나 세상에서 선한 영향력과 변화의 근원이 되라는 요청입니다.

교회가 진정한 사회의 빛이 되기 위해서는, 겉으로 보이는 봉사나 기부에 앞서 복음의 본질과 진리를 먼저 붙들어야 합니다. 이 위에서 “가난한 이웃과 약자를 돕고, 직장에서 정직하게 일하며, 학교에서 바른 가치관을 실천하는 것”이 모든 실천, 곧 ‘복음적 사회적 책임’이 바로 복음주의 신앙이 말하는 빛과 소금의 구체적 사명입니다.3)


3. 역사적 교훈 – 신사참배와 WCC 논쟁

# 신사참배 논쟁
일제강점기, 많은 교회와 목회자들은 국가의 압력에 굴복하며 진리보다 타협을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신앙본질 훼손, 교단 분열과 사회적 신뢰 상실이라는 아픈 상처와 역사의 경고를 남겼습니다.4)

● 교훈 :
“성경의 진리보다 권력과 세속에 순응할 때, 교회는 도덕적 근거와 선교적 정체성을 모두 잃는다.” 진리를 지키지 못한 타협은 교회의 도덕적 기반과 선교의 정체성을 동시에 무너뜨렸습니다.

# WCC 논쟁
세계교회협의회(WCC)는 ‘정의와 평화’를 추구하며 다양한 사회운동을 전개해왔습니다. 그 운동 자체에서 참고할 점도 있으나 복음주의적 입장에서는 반드시 분별이 필요합니다.
‘복음의 유일성’과 ‘성경의 최고 권위’가 다원주의와 해방신학의 흐름 속에서 희석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5)
복음의 본질을 잃고 사회참여에만 머물면 교회는 방향 잃은 나침반과 같습니다. 역사는 복음 중심을 놓칠 때, 교회는 정체성과 신뢰를 함께 잃음을 보여줍니다.

● 교훈 :
오늘날에도 교회가 말씀대로 투명하게, 정직하게 행동하며 청년 연대활동과 지역 복지사업을 꾸준히 실천할 때 세상은 교회를 ‘신뢰받는 교회’로 인정합니다. 실제로 한 교회는 지역의 어려운 이웃을 위한 투명한 복지사업을 청년들과 함께 실천하며 주민들로부터 ‘신뢰받는 교회’로 자리 잡았습니다. 6)


4. 복음의 본질, 다시 회복해야 할 때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외형상 사역만 많아지고 정작 복음의 본질은 약해진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사역이 아무리 많아도 복음 중심이 약해지면 교회는 본질적 힘을 잃습니다.

(1) 하나님이 주신 창조질서와 섬김의 사명
창세기 1:27–28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땅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이 이마고 데이(Imago Dei, 하나님의 형상)는 교회가 인간의 존엄을 존중하며, 세상을 돌보고, 창조세계를 보전하는 본질적 책임을 가진 존재임을 강조합니다. 7)
실제 사례로, 2024년 강원도의 한 시골 교회는 지역사회와 협력하여 환경정화와 어르신 돌봄 사업을 함께 실시해 지역 신뢰도가 21% 상승하는 구체적 결과를 보였습니다. 8)

(2) 복음은 영혼과 삶, 두 날개로 완성됩니다.
복음은 단순한 교리나 설교로 그치지 않습니다. 영혼의 구원과 삶의 실천이 함께 존재할 때 복음은 완전한 힘을 발휘합니다.
야고보서 2:15–17은
“누가 헐벗고 굶주렸는데 평안히 가라 하면서 돕지 않으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고 말씀합니다.

복음주의 신학자 존 스토트는 “복음은 전인적 변화와 사회적 실천을 반드시 수반하나, 본질 곧 구원의 유일성은 결코 희석될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9)

실제 사례로 2025년 수도권의 한 교회 청년부는 실직 가정과 아동 지원 사역을 적극적으로 펼쳐 청년 출석률 38% 증가하였고, 지역 언론에서 ‘희망의 교회’로 6회 보도되며, 복음의 두 날개(전도와 실천)가 균형 있게 작동한 변화의 증거가 되었습니다.

(3) 균형 잡힌 복음 – 복음주의의 중심10)
복음의 본질은 단순 사회운동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와 말씀의 권위(Sola Scriptural)에 있습니다. 교회의 사회적 실천은 복음에서 시작되며, 그 근간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 오직 말씀, 오직 진리에 있습니다.(행 4:12, 딤후 3:16-17)
따라서 교회는 시민단체가 아니라 복음의 본질을 드러내는 영적 등대이며,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실천하는 공동체입니다.


5. 복음적 실천 – 구체적 방안

① 진리 위에 세운 신앙생활
시대가 어떠하든,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 중심 신앙을 변함없이 지키는 것이 복음적 신앙과 모든 사회적 책임의 출발입니다. 11)

② 공의와 사랑의 실천
투명한 재정 운영, 책임감 있는 리더십, 사회적 약자 돌봄은 복음적 삶의 열매이며, 교회가 세상 속에서 신뢰를 얻는 실제적 실천입니다. 12)

③ 각자의 자리에서 빛과 소금되기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정, 직장, 학교에서 정직, 사랑, 진리의 삶을 실천할 때 교회의 사회적 책임은 실제로 드러나고, 복음적 신앙은 세상 속에서 구체적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6. 결론 – 세상을 섬기는 교회, 오해 없는 교회

오늘 한국사회는
진리보다 이념이 앞서고, 윤리보다 이익이 우선되는 공동체 신뢰가 무너진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정치적 혼란, 언론의 왜곡, 경제 불평등, 청년 절망, 가정의 해체와 세대 불신이 겹쳐 사회 전체가 방향감각을 잃은 현실입니다. 이런 시대에 교회는 비판의 중심에 서기보다, 진리로 섬기고, 사랑으로 화해하며, 희망으로 빛을 전하는 복음적 공동체로 거듭나야 합니다.

복음주의 신앙에서 말하는 ‘사회적 책임’은 복음을 대신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의 깊이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믿음의 열매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세상 아픔과 문제에 책임 있게 응답해야 합니다.

교회와 성도가 빛과 소금의 본질을 회복하고, 믿음의 진정성을 삶으로 드러낼 때, 세상은 교회를 통해 진짜 믿음과 희망을 발견할 것입니다.


각주:
• 1) 기윤실, 「2023년 한국교회 사회적 신뢰도 조사」, 2023 / goover. al「2025년 한국교회 모태신앙 비율 분석」, 2025
• 2) John Stott, Christian Mission in the Modern World, IVP, 1975# 예시와 적용
• 3) 한국기독교윤리학회, 「기독교 사회책임의 신학적 근거」, 2023
• 4) 한국기독교역사학회, 「한국교회와 신사참배 연구」, 두란노, 2012  / 「신사참배와 한국교회 타협의 교훈」, 박용규, 한국기독교사연구소, 2015
• 5) 국민일보,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신뢰받는 교회」, 2024
• 6) 한국복음주의신학회, 「한국교회의 복음적 회복 과제」, 2024이제는 복음의 뿌리로 진지하게 돌아가야 할 때입니다.
• 7) 한국기독교생명윤리학회, 「창조질서와 생명신학」, 2024
• 8) 강원일보, 「시골교회의 환경정화 및 돌봄 사역」, 2024.8
• 9) 존 스토트, 현대 복음주의와 사회참여, IVP, 1986
• 10) 국민일보, 「청년부 사회참여사역 ‘희망의 교회’ 사례」, 2025.2
• 11) “다른 이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행 4:12), /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딤후 3:16–17)
• 12) 목회데이터연구소, 「2023~2025 한국교회 사회 실천 통계」


인용 :
• [1] 2023년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 결과자료집 (최종)
https://cemk.org/resource/29349/
• [2] 우리 국민 중 "한국교회 신뢰" 응답 5분의 1에 그쳐
https://www.igood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72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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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 류 자유포럼
   
“ 한국교회와 정교분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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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2025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벌어지는 김문수와 이재명의 대결은 단순한 대통령 선출을 위한 경쟁이 아니다. ”

지금 2025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벌어지는 김문수와 이재명의 대결은 단순한 대통령 선출을 위한 경쟁이 아니다.

이 대결은
善(선)과 惡(악)의 싸움이고,
진실과 거짓의 싸움이고,
正義(정의)와 不義(불의)의 싸움이고,
天倫(천륜)과 悖倫(패륜)의 싸움이고,
淸廉(청렴)과 腐敗(부패)의 싸움이고,
犧牲(희생)과 憎惡(증오)의 싸움이다. 

동시에 이승만과 박정희의 자유와 근면 자조의 아들과
김일성과 김정일, 김정은의 세습 전체주의 뻐꾸기의 托卵(탁란)과의 싸움이다. 

동시에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善意(선의)와 惡意(악의)의 투쟁이기도 하다.

인간은 본래 兩面性(양면성)의 존재다.
그 양면성의 존재가 惡意(악의)의 선동으로 활화산 같은 증오심을 뿜어 낼 때, 대중은 善意(선의)보다는 惡意의 선동에 유혹되기 싶다. 

사실 증오심이라는 악의의 선동은 인간을 훨씬 강력하게 만든다.
앞뒤 가리지 않는 추동력을 가진다. 그래서 포퓰리즘은 항상 大衆(대중)의 강력한 마취제이다. 

선의는 인간의 도덕적 덕성의 산물이지만, 개인의 천성과 신념의 뒷받침이 없으면 추동력이 약하다.
모두 타인의 일로써 칭송의 대상은 될지언정, 내가 실천하기는 쉽지 않는 남의 일일뿐이다. 

나는 김문수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고 난 뒤 경기 포천의 한센인 정착 마을로 찾아서, 15년 전 후보가 되면 찾겠다는 약속을 지켰다는 기사를 보고 울컥했다. 

한센인 여자 주민이 김문수에게 꽃다발을 건네며 눈물을 흘리는 것을 김문수가 감싸 안으며 함께 울먹이는 표정을 보며 “아! 이 사람은 본성이 그렇구나. 이것은 일반 정치인들의 가식적인 행위와는 차원이 다르구나.” 

김문수는 15년 전 경기도지사를 할 때 한센인들이 무허가로 운영하던 염색공장을 섬유단지로 조성했고, 한글 등을 배울 수 있는 교육시설도 만들어줬다. 

그리고 한센인들의 손을 잡아주고, 그들과 하룻밤을 함께 보냈다. 이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한센인이란 누구인가? 나병환자라고도 불리고, 예전에는 문둥병이라며 하늘이 내린 天刑(천형)이라고도 했다. 온몸이 썩어 문드러지는 무시무시한 병이었다. 

영화 ‘벤허’에서 주인공 벤허의 어머니와 여동생이 지하 감옥에 오래 갇혀 있다가, 문둥병에 걸려 외진 동굴로 추방되어, 세상에서 격리되어 살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한하운이란 오래 된 문둥이 시인이 있었다. 문둥이가 된 자신의 운명을 슬퍼하며 방랑하는 영혼을 노래하는 시들이 있었다. 

문둥이는 아이의 간을 빼어 먹는다는 미신 때문에 슬퍼하는 시도 있었다. 그만치 문둥이들은 혐오와 기피의 대상이었다. 

김문수는 그런 곳에서 한센인들의 손을 잡아주고 하룻밤을 같이 묵었다는 것은, 언행이 정치적, 가식적인 일반 정치인들과 근본이 다른 사람인 것을 확연히 보여준다. 

한센인들은 말한다. “당시 사람들은 모두 우리를 괴물 취급하듯 핍박하고 돌을 던지지만, 김 후보는 우리와 함께 하룻밤을 새우고 밥을 함께 먹었다.
낮은 곳에서 사는 사람들을 늘 지켜주고 안아주는 분” 이라는 감사 편지를 낭독했다. 이런 사람이 김문수다. 

이재명은 전에 이런 명언을 남겼다. “사람을 평가할 때 그의 말을  믿지 말고 그 사람을 행적을 보고 판단해야 된다.” 정말 명언이다. 

김문수가 대학 시절 서울대 학생이라는 큰 기득권을 던지고, 노동 현장에 뛰어들어 노동운동을 하다가, 정보사찰 기관에 잡혀 고문을 당하고 약 3년 간 감옥살이를 했다

노동운동을 하다 도피 중 같은 노동운동가이자 전남 순천의 딸 설난영씨를 만나 결혼했다. 

경기도 부천 소사에서 3선을 내리 당선되고, 경기도 지사로 8년 동안 경기도 GTX 착공, 평택 삼성전자, 파주 LG 단지 등 수많은 업적을 쌓았으면서 조그만 부정부패의 소문도 없었다.  

세 번의 국회의원과 두 번의 경기도지사를 지냈음에도, 지금도 관악구 봉천동의 24평 아파트에 살고 있다. 
 
약 10억 원의 민주화 보상금 지급 때 김동길, 장기표와 함께 보상금을 받으려고 민주화운동을 한 것이 아니라며, 수령을 거부한 3인 중의 한 명이 김문수다. 

그는 젊지도 않고, 말이 매끄럽지도 않고, 임기응변도 잘 하지 못하지만 진정성이 있고, 앞과 뒤가 같고 처음과 끝이 같은 사람이라고 부인 설난영씨는 말한다. 

그러면 이재명의 행적은 어떠한가? 이재명의 형수 욕설이나, 성남시장 재직 중 대장동, 백현동을 비롯한 너무나 많은 각종 범죄 연루 혐의도 더 이상 이야기 하지 않겠다. 

대장동, 백현동 등 여러 사건과 관련된 6~7명의 자살자가 생긴 것도 더 이상 이야기 하지 않겠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모든 범죄가 면소되는 법률도 이미 국회에서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통과시켰다. 당선 직후 대통령 자격으로 공포만 하면 모든 범죄혐의는 공식으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대통령 선거도 인간 내면에 숨어있는 갈등의 표출의 場이 될 것이다. 선의라는 이성과 악의라는 증오감과의 투쟁의 결과가 될 것이다. 

문제는 증오감이라는 악의의 선동은 항상 초콜릿처럼 달콤한 당의정으로 포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 우리 내면의 선의와 악의의 소리 중 어떤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지는 각자가 알아서 판단할 일이다. 

증오와 저주의 선동자에게 넘어가는 국민이 될지,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부터 챙기는 그런 지도자를 선택하는 국민들이 될지 이제 결정할 시간이 왔다. 

우리가 자유시민의 자격을 누릴 수 있을지 아니면 정신적 노예가 될지는 각자가 알아서 할 일이다. ~^

2025. 5. 15. 光敎山 山人
첫 투표권을 행사하는 큰 손자의 선택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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