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부에서는 초대교회를 자주 인용하며, 이른바 “마가의 다락방의 사도교회”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말이 곧바로 올바른 신학이나 건강한 교회론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참된 회복은 구호가 아니라 성경 전체의 가르침과 사도적 신앙의 실체(복음, 예배, 성례, 직분, 교회의 질서)를 바르게 이해하고 따르는 데서 시작됩니다.
초대교회는 무질서한 열정 공동체가 아니라, 사도들의 가르침 위에서 예배와 교제와 권징과 직분이 정돈되어 가던 말씀 중심의 공동체였습니다. 따라서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주장 자체가 정당하려면, 초대교회가 실제로 무엇을 했고 어떤 구조를 가졌는지에 대한 정확하고 균형 잡힌 이해가 동반되어야 합니다.
2. 용어의 왜곡: “목사라는 직책은 성경에 없다”는 주장에 대하여
어떤 이는 “성경에 목사라는 직책은 없고 목자라는 말만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직분의 실체(기능과 사명)보다 명칭(단어)에 집착하는 방식입니다. 성경은 종종 동일하거나 유사한 직무를 서로 다른 표현으로 설명하며, 교회는 그 성경적 직무를 역사 속에서 더 분명히 구분하고 정리해 왔습니다.
교회가 ‘목사’라는 명칭을 사용해 온 것은 성경이 말하는 목자적 사역(돌봄)과 교사적 사역(가르침)을 수행하는 직무를 정리하기 위한 교회적 언어입니다. 그러므로 “그 단어가 성경 본문에 그대로 없으니 직분 자체가 없다”는 논리는, 성경을 단어 목록처럼 다루는 비성경적 방식에 가깝습니다.
3. 초대교회에서 “목자·장로·감독” 개념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초대교회는 지도자의 직무를 설명할 때 주로 다음의 표현들을 사용했습니다.
- 장로(πρεσβύτερος, presbyteros): 공동체 안에서 세움 받은 지도자(직분) - 감독(ἐπίσκοπος, episkopos): 돌보고 살피며 책임지는 감독(직무의 성격) - 목자(ποιμήν, poimēn): 양 떼를 먹이고 보호하며 인도하는 목양(사명/이미지)
중요한 점은 초대교회에서 이 개념들이 종종 서로 분리된 전혀 다른 집단을 가리키기보다, 동일한 목회적 직무의 서로 다른 측면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입니다.
- “장로”는 직분(세움)을 강조하는 표현이고, - “감독”은 책임과 돌봄(관리·감독)의 기능을 강조하며, - “목자”는 목양과 말씀 사역(먹임과 보호)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즉, 초대교회는 말씀을 맡아 가르치고, 성도를 돌보며, 교회를 감독하고, 질서를 세우는 지도자의 직무를 분명히 갖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이를 ‘목회자/목사’로 정리하여 부르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사도적 직무를 역사 속에서 더 명료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따라서 초대교회를 많이 인용하면서도 정작 초대교회가 지녔던 직분의 실체와 질서를 부정하는 것은, 초대교회의 ‘형식’을 말하면서 ‘내용’을 놓치는 모순이 될 수 있습니다.
4. 교회의 직분은 “권력”이 아니라 “보호 장치”다
성경이 직분을 주신 목적은 공동체를 지배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진리 안에서 교회를 보호하고 양육하기 위한 은혜의 구조를 세우려는 데 있습니다.
- 교회는 가르침이 왜곡될 때 쉽게 무너집니다. - 카리스마 있는 개인의 말이 말씀보다 앞설 때, 공동체는 혼란에 빠집니다. - “나는 직분도 필요 없고 제도도 필요 없다”는 외침이 커질수록, 실제로는 개인의 해석과 개인의 권위가 교회를 지배하게 되는 역설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직분과 질서는 인간이 만든 억압 장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교회를 진리 안에 세우기 위해 허락하신 공적 책임의 체계입니다.
5. 모욕적 언어와 언어유희에 대하여: “목사=죽이는 자” 같은 주장
일부는 ‘목사(牧師)’라는 명칭을 한자의 표면만 가지고 왜곡하며, 심지어 “신자들을 죽이는 자”라는 식의 극단적 표현을 반복합니다. 그러나 이는 신학이 아니라 선동적 언어유희에 가깝습니다.
‘목(牧)’은 돌보고 먹이며 인도한다는 뜻이고, ‘사(師)’는 가르치는 자, 지도하는 자를 뜻합니다. 교회가 이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직분의 본질을 훼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말씀으로 가르치고 양 떼를 돌보는 사명을 표현하기 위함입니다.
물론 교회 역사 속에 직분을 남용한 사례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직분 남용의 문제는 직분을 폐기함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직분을 더 거룩하게 회복하고, 더 엄격한 책임과 검증 아래 세우는 것이 바른 길입니다.
6. 말라기의 십일조 본문을 이용한 “목회자 일반 정죄”에 대하여
말라기의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향한 회개 촉구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예배의 회복을 요청합니다. 그런데 이를 근거로 오늘의 목회자들을 일괄적으로 “나쁜 사람”이라 규정하거나, 교회 공동체를 통째로 도둑 취급하는 방식은 성경 해석의 균형을 잃기 쉽습니다.
교회는 언제나 말씀 앞에서 재정의 정직과 청지기적 책임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회개 촉구의 말씀을 증오와 조롱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성경의 목적과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는 위험한 태도입니다.
7. 축도의 신학적 의미와 중요성: “개인의 덕담”이 아니라 “교회의 공적 선포”
축도는 단순한 예배의 마무리 인사나 개인의 덕담이 아닙니다. 축도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은혜와 평강을 주시기를 공적으로 선포하는 거룩한 행위이며, 교회의 예배 속에서 말씀 사역을 맡은 자를 통하여 시행되어 왔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축도가 “누가 하느냐”의 문제를 넘어, 교회의 공적 예배가 무엇인가, 직분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선포되는가의 문제라는 점입니다.
- 축도는 개인이 임의로 수행할 수 있는 사적 행위가 아니라, - 교회가 인정한 직분과 질서 안에서, - 하나님 앞에서 맡겨진 공적 사역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목회 직분을 부정하거나 교회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흐름 속에서는, 축도의 의미 역시 쉽게 가벼워지고 왜곡될 위험이 큽니다. 축도를 경시하는 태도는 단순히 ‘형식’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교회 예배의 공적 성격과 은혜의 선포 구조를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8. 결론: 참된 “초대교회 회복”은 직분과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세우는 것이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말이 참되려면, 초대교회가 실제로 붙들었던 것을 붙들어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 사도적 가르침(정통 교리)을 지키고, - 공동체의 질서를 세우며, - 지도자의 직무(장로·감독·목자)를 통해 양 떼를 돌보고, - 공적 예배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하는 공동체였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향한 건강한 개혁은 “직분을 무너뜨리는 급진”이 아니라, “직분을 거룩하게 회복하는 성경적 개혁”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을 높이기 위해 직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질서를 지켜 공동체를 보호하고, 성도들이 바른 말씀 위에서 분별하며 자라가도록 하기 위해 이 문제를 밝힙니다.
우리 모두가 선동적 언어와 단편적 주장에 흔들리기보다, 성경 전체의 빛 아래서 교회를 이해하고, 교회의 질서와 예배의 거룩함을 지키며, 참된 은혜와 평강 안에서 신앙의 길을 함께 걸어가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날 다양한 주장과 해석들이 교회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일수록 우리는 감정적인 반응이나 사람 중심의 판단이 아니라, 성경과 교회의 바른 전통 위에서 신앙의 기준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는 단순한 모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과 질서 위에 세우신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예배와 사역은 개인의 생각이나 주장보다, 성경이 가르치는 원리와 공동체의 공적 질서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성경은 교회를 돌보고 가르치며 인도하는 직분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초대교회는 장로와 감독을 세우고, 양 떼를 목양하도록 맡겼으며, 이를 통해 공동체가 혼란이 아니라 질서 가운데 세워지도록 하였습니다. 교회가 오늘날 말씀을 맡아 섬기는 직분을 ‘목회자’ 또는 ‘목사’라 부르는 것은 이러한 성경적 사역을 계승하여 표현한 것입니다. 이는 사람을 높이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 말씀을 바르게 가르치고 성도들을 보호하기 위한 책임의 자리입니다.
교회의 직분은 권력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큰 섬김과 책임을 의미하며, 공동체가 진리 안에서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돕는 은혜의 구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직분을 사람 중심으로 바라보기보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시는 방식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특별히 축도는 예배의 마지막 순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은혜와 평강을 베푸시기를 선포하는 거룩한 행위입니다. 축도는 개인의 덕담이나 사적인 인사가 아니라, 교회의 공적 예배 가운데 말씀 사역을 맡은 직분자를 통해 선포되는 하나님의 복의 선언입니다. 교회가 오랜 시간 이 전통을 소중히 지켜 온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의견과 주장 속에서도 사람을 향한 정죄나 비난보다, 말씀 안에서 바른 이해와 분별을 세워 가야 합니다. 교회의 질서를 존중하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예배의 거룩함을 지켜 갈 때, 공동체는 더욱 건강하고 평안하게 세워질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말씀 위에 굳게 서서, 교회의 질서와 은혜를 함께 지켜 가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강 가운데 신앙의 길을 걸어가기를 소망합니다.